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죽음 Aug 24. 2024

열세 살 대문자 F

마음알기

스테르담의 책에서 읽었었나?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를 때는 자기의 감정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하지만 진실로 한 감정에 발부터 머리까지 푹 빠져 뽀글뽀글 공기방울이 올라오는 시점에서는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허리에서 가슴쯤. 그나마 팔을 휘휘 저으면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는 글을 쓸 수 있다.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기쁘거나, 놀랍거나 

왜 그러한 마음이 들었는지를 가만히 내려다 놓고 천천히 글로 토하다 보면 

그제야 내가 빠져있는 곳이 겨우 무르팍 정도의 개울가였구나 하고 알아차릴 때가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 두 다리를 곧게 펴는 일인 듯하다. 


아무튼, 오늘 아이들의 글을 열심히 읽다가 감정에 대한 글을 읽고는 내심 반가웠다. 

그래, 그랬구나. 열세 살의 감정은 이렇구나. 





나도 나의 감정상태를 잘 모른다. 

딱히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았고 밖에도 잘 나가지 않아 

내가 평소에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표정이 들었는지 의문이다. 

방학 동안 딱히 웃지도 않았고 화나지도 별로 울지도 않았다. 그저 텅 빈 느낌이다. 


중략 


내 감정상태를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굳이 말해보라고 한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 


 



아침마다 우리 반은 기분출석을 부르는데, 

많이 나오는 대답은 주로 "멍해요" , "억울해요" , "심심해요"다. 

가끔 "기대돼요." , "좋아요" 도 있는데 체육이 들었거나 주말을 앞두고 있을 때 주로 나온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 대답은 "멍해요" 


그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생각은 있는데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는데 

오늘 아이의 글을 읽고는 좀 미안했다. 


텅 빈 가슴이라니. 

열세 살 아이의 가슴이 텅 비어있다니 

이제껏 살아오면서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중년 나이쯤 

열심히 시간을 들여 노력한 일의 결과가 너무 소박한 삼십 대쯤

그토록 뜨겁게 사랑한 이가 떠나갔을 스무 살 때쯤 

느껴야 하는 것 아니던가? 


아무튼 

텅 빈 가슴을 표현한 그 아이에게는 마음을 물이라 생각하고 잘 들여다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자신이 얼마나 반짝이고 예쁜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끔은 아이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놀랍다. 

그것은 아마 머리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헤아려서일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