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게으른가?
수요일 아침 6시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그녀가 말했다.
"저는 참 게을러요."
나도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라고.
이 날의 주제는 더 넓게 스스로를 규정하라였다.
생각의 범위를 넓혀 우리 자신을 더 넓게 규정하면 더 큰 일을 하고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책 속 내용이었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은 운명을 결정한다는 문장에서 큰 생각에 방점을 둔 적이 없었던 듯하다.
돌이켜보니 나의 우물은 좁았고 그 속에 들어앉아 바라본 하늘은 크지 않았다.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는 일에 좀처럼 나서지 못한 나는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겼기에 그녀의 첫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모임장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진짜 게으른 사람은 스스로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게으르다고 말하던 그녀는 삶을 바꿔보겠다며 20대 시절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지금은 돌아와 두 아이를 기르면서도 새벽기상에 재테크공부에 최근에는 공부방을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 삶의 열정과 실행력을 두고 누가 감히 게으르다고 평할 수 있을까?
심지어 미국에 유학 가서 홀로 고군분투를 해보니 완전히 다른 내가 되어 이제 어떤 일을 겪어도 못할게 뭐 있냐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게으른 고백은 자기 객관화와 냉철한 판단의 엄격함에서 나온 오류였나 보다.
그에 반해 나는 왜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진짜 게으른가?
게으름이 할 일을 미룬다는 것이면 절대 나는 게으르지 않다.
시간 약속을 어긴 적도 없으며, 중요한 일정을 까먹고 제 때 과제를 못 한 적이 거의 없다.
출근시각은 늘 일정하고, 세금 연체료도 딱 한번 내봤을 뿐이다.
설거지를 다음 날로 미룬 적이 없으며, 3개월째 하고 있는 운동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왜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정의 내렸을까?
찾았다.
스스로를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박.
어서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
그럼에도 따라주지 않는 체력과 떨어지는 주의력에 대한 불만.
부지런하게 바삐 종종거리며 살면서도 나는 게을러서 아직 여기뿐이라고 말하는 자책.
그리고 마침내
게으름이라는 방패뒤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여유 있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보였다.
당당하게 나는 쉬겠노라 말하지 못하고
나는 원래 게을러서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고 하면서 늘어져 있는 거라는 핑계를 찾고 싶은 거였다.
사실은 평안하고 싶은 건데.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고 하니
좋다. 나는 이제 나를 규정하겠다.
나는 게으르지 않다.
나는 부지런하지 않다.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봄날의 초록을 모으고, 여름의 햇살을 모으는
가을의 구수한 단풍잎 냄새를 맡으며 눈 오는 날 토끼 발자국을 쫓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