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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Sep 04. 2024

마음을 치유하는 부엌

영혼도 굶으면 배가 고프다. 

영혼도 먹지 못하면 굶주리며 배고픔을 호소하지 않을까?  

그러다 결국 기아에 빠져서 메마른 풀처럼 바스락 사그라드는 것이다.      


마코토가 그랬다. 연애를 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엄마.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한 문장은 그녀와 나의 어느 하루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유치원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늦장을 부리는 아이. 도시락을 챙기고 학교 알림장을 봐주면서 지각을 겨우 면하는 출근. 바쁜 회의 일정으로 유치원에 늦게 도착하면 왜 늦게 왔냐고 입이 나와있는 아이. 집으로 돌아와 아침의 난장판을 그대로 마주하는 현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가 원하는 반찬을 만들고 집을 치우고 이제 겨우 아이를 씻기고 나면 그제야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달라고 하는 남편까지. 마코토는 좀비들이 물고 늘어져 몸 여기저기가 뜯겨나가는 감정을 느낀다. 털썩!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얼 좋아하는지도 잊고 살았던 마코토는 마음을 치유하는 약을 요리하는 마치다를 만나 회복된다. 그녀의 마음을 치유한 것은 파르페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애쓴 시간이었다.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자신의 영혼을 먹이기 위한 시간.


마치다씨는 여정의 초입에 그녀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왜 자신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돈을 쓰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요?”

“일이나 가족을 위해서는 정성을 들이고 자신에게는 정성을 들이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마코토 씨가 1엔의 가치도 없는 벽의 얼룩 이하에 스웨터 보풀보다 뒤떨어지는 존재라서 인가요?”      


바람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엄마로 살다 보면 제 몸을 돌보는 것보다 아이를 우선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니까. 

나에게까지 정성을 쏟을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좋아하는 과일이 무엇인지조차 선뜻 말하지 못하는 마코토가 내 모습 같았다.      


개학 전날 나는 나를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나를 위한 요리. 나를 맛있게 먹이기 위한 시간과 정성을 쏟는 일은 처음이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허기를 면하거나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를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나를 위한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건강하고 맛있는 점심 한 끼. 별것 없는 가지무침과 견과류를 넣은 닭가슴살 구이, 호박찜과 양배추쌈. 조용한 식탁에 앉아 나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고 맛을 음미하는 시간은 완벽히 충만했다.

 나의 영혼을 먹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그렇기에 마코토를 응원했다. VIP를 위한 완벽한 파르페를 찾기를. 마코토의 완벽한 파르페는 신혼여행에서 우연히 먹었던 망고와 여왕의 대접을 받는 것 같은 파르페를 찾는 일이었고 그 일은 스스로 해야만 했다. 

해답은 내가 찾는 그것을 위해 나의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에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해답은 마코토의 퐁퐁 솟아오르는 샘처럼 싱그런 사랑을 차오르게 했고 그녀의 웃음을 되찾아주었다.      


살아가는 대로 삶은 이어진다. 하지만 나로 살지 못함은 마르고 건조하며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 것 같은 사막의 굴러다니는 풀과 같다. 그 상태로는 그 어떤 존재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따뜻하고 배불리 영혼을 먹이자. 나와 내 세상이 사랑으로 차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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