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는 F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죽음 Nov 20. 2024

김농부와 백두

너는 멋진 개였어. 

김농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백두, 이제 다른 곳으로 갈 거야.” 


 김농부는 은퇴 후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넓은 땅에 농사를 시작하며 진돗개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정확히는 풍산개와 진돗개의 어느 중간쯤이었지만 백두는 참 영특한 개였습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집 주변에서는 똥을 누지 않아 똥을 치울 일이 없었고, 가족과 외부인을 귀신같이 구별했으며 이천 평이 넘는 김농부의 밭을 지켰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고라니를 막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김농부가 백두의 목줄을 풀어주면 백두가 밭을 한 바퀴 돌며 영역표시를 하는 통에 고라니도 너구리도 얼씬 하지 못했습니다. 백두는 늘 산에 올라가 볼일을 보고 왔습니다. 물론 집으로 바로 들어오지 않고 고라니도 쫓고 오소리도 쫓고, 닭도 쫓고 개구리도 쫓아다니며 온 자연을 마음껏 뒹굴고 들어왔지요. 뱀을 잡기도 하고, 벌에 쏘여 눈이 퉁퉁 부어서 들어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김농부에게는 그런 백두가 늘 자랑이었습니다. 백두는 순한 눈망울로 의젓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개였습니다. 하지만 농사일이 끝나는 이번 겨울에는 김농부가 도시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목소리도 크고 덩치도 큰 백두를 데리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김농부는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개를 좋아하는 한 부부를 만났는데 그 부부는 김농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백두를 키우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김농부와 백두는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인 산책을 함께 하는데 김농부는 마음이 참 허전합니다. 백두가 잡아왔던 고라니를 묻어주었던 일, 주말에 볼일 보고 돌아오면 늘 저만치서 달려와 펄쩍펄쩍 뛰며 반가워했던 일, 나무를 심을 때마다 옆을 따라다니며 참견했던 일, 마을로 내려가 동네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바람에 백두 자식들이 태어나는 것을 봤던 일, 오소리와 싸우느라 지쳐서 밤새 낑낑대는 백두를 걱정했던 일 등. 함께한 시간만큼 쌓여있는 추억이 생각납니다. 


 생각해 보니 백두를 키우며 화가 나거나 힘들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 부부만 사는 적적한 산골생활에 백두덕에 웃을 일도 있었고, 바쁜 농사일을 하면서도 잠시 쉴 틈이 있었고, 외롭거나 무서운 일도 많지 않았다는 것이 이제야 생각납니다. 

 그런 김농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두는 그저 산책이 즐겁습니다. 손수 만들었던 백두의 집을 문득문득 바라보며 김농부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허전하겠지요. 그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마음 줄 것을, 아니면 덜 마음을 주어야 했을까요? 

더 줘야 할지 덜 줘야 할지 딱 맞춤처럼 계량해서 마음을 주는 사람은 세상천지 없겠지요? 

그러면 주어야겠습니다. 앞으로도요. 또 누구를 만나더라도요. 


주는 만큼 쌓이는 추억으로 김농부는 오늘을 살아갈 테니까요.

그래도 김농부의 딸은 백두의 빈자리가 조금 빨리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에 안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