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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Nov 07. 2024

학교에 안갔다.

마음이 아플때는 어떻게 하지? 

오른쪽 정강이에 작은 상처가 있다. 언제 생겼는지 어디에서 다쳤는지 알 수 없지만 꽤 여러 주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씻을 때마다 눈길이 갔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언제 없어질까?' 

아프지는 않지만 볼 때마다 노화의 속도가 보이는듯해서 좀 슬펐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 어딘가에 난 상처가 정말 정말 오래간다. 

그러다 문득,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떨까? 하고 생각이 번졌다. 

내 마음의 난 상처는 언제 사라질까?


학교에 가지 않았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했던 날 이후로 2년 만이었다. 어제 아침에 교무실에 내려가서 이틀을 쉬겠노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이유를 물으셨다. 

"겉으로는 몸살이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아파서입니다." 

교감 선생님은 얼굴을 빤히 보시더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지난주 난생처음 신경정신과를 처음 가서 의사 앞에서도 그렇게 말했었다. 

"왜 오셨나요?"

"힘들어서요."

"어떤 점이 힘든가요?"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계속 들어요. 하루종일 긴장감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합니다. 이겨 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게 잘 안돼요." 


몸은 아프면 염증반응을 일으키며 신체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서들이 있다. 열이나든지, 어딘가 벌겋게 부어오른다든지, 설사를 하거나 기침이 계속 나올 수도 있다. 정 안되면 피라도 뽑으면 되겠지만 마음의 영역은 아픔을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하는 여러 가지 문항으로 된 검사들을 해봐도 내 증상과 딱 맞는 답변을 고를 수 없었다. 

잠은 잘 자는데 악몽을 계속 꾸는 문항은 없었고, 배가 고파서 밥은 먹지만 맛이 없다는 답변은 고를 수 없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내 삶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마음이 하루 종일 드는 것이 아니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자세히 말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지 물었고, 나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스트레스의 요인을 설명했다. 

몇 분만에 약과 함께 진단서가 나왔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심한 것은 아니에요.' 또는 '노화로 인한 감정조절능력 비대증입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우울장애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뒤에 NOS라고 붙어 있었는데 찾아보니 우울증의 하위개념 정도라는 설명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보셨다는 진단이었는데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럽다. 약을 먹으며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마음을 잘 다독여서 건강을 되찾도록 회복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종원작가의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 보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9단계 글쓰기가 있다. 

가장 먼저 아픈 이유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한다. 거짓으로 말고 가장 솔직한 자신을 만난다고 생각해야 진짜 아픔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하다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나의 마음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해인지 무엇인지 이유도 모른 채 오랜 지기와의 관계가 틀어져서 괴로웠고, 지도에 불응하는 몇몇 아이의 거센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 자기편을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민원에 지쳤고, 이를 엄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눈초리에 주눅이 들었다. 시끄럽고 산만하고 질서가 잘 잡히지 않는 교실에 앉아있는 것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사랑했고 좋아했고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거절당했다고 느껴졌나 보다. 꾹꾹 담긴 상처가 이제는 좀 아프니까 조심하라며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아픈 내 마음을 이해하고, 그동안의 고생과 헌신을 인정해야지.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 살려고 해야지. 내가 나를 보살펴야지. 


어렸을 적 감기에 걸릴 때면 엄마는 부드럽고 따뜻한 수프를 끓여서 주셨다. 건강한 다른 가족들은 못 먹는 그 수프를 나 혼자만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순간이 행복했다. 몸도 뜨끈뜨끈하고 수프는 따뜻했고, 엄마의 사랑은 달콤했다. 수프를 한 그릇 다 먹으면 엄마는 이제 다 나았다고 안심하셨다. 


마음의 감기에는 어떤 수프가 필요할까? 

먹을 수는 없지만 글은 쓸 수 있겠다.

뜨끈하진 않아도, 아직 미적지근해도 글이 한 편 써졌으니

조금은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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