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응. 방을 만드는 거야.

by 괜찮은 D

그는 여러 개의 방을 갖고 있었다.

벽면에 만화책이 빼곡히 꽂혀있고 만화를 볼 수 있는 적당한 노란 스탠드가 있으며, 누워서도 만화 포스터를 볼 수 있는 만화방이 그에겐 있다. 또 그는 영화방도 가지고 있었는데 어두운 조명아래 빔으로 쏘아 만드는 영상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세상 편한 자세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술방이었다. 애주가답게 세계의 다양한 술이 담긴 술병을 가득했던 방. 과연 그 방에서 한 병 한 병 먼지를 닦아내고 마시는 술 한잔은 어떤 맛일지가 궁금했다.

어느 외로운 여름날 밤에 잠은 오지 않으니 촛불 같은 빛 하나에 의지해 고즈넉이 정종 딱 한잔을 마신다면, 한낱 외로움쯤이야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그의 방들은 또 다른 세계였다.

먹고 자기 위한 기능적 의미를 지닌 방들과 달리 슬픔과 재미, 웃음과 침묵, 이상과 현실을 모두 지니고 있는 방들이 있다면 삶이 더 다채로워질 테니까.


나도 방을 꾸렸다.

침실에 딸린 두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을 오로지 나의 영역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드디어 모습이 갖춰졌다.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을 마련하고 책꽂이는 정리했으며, 갖고 싶었던 노트북 거치대와 예쁜 색의 마우스까지 올려두었더니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 방의 이름은 꿈방이다.

보이지 않는 문을 철컥 열고 들어오면 드디어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이곳은 꿈꾸는 방. 꿈을 이루어나갈 방. 꿈을 현실로 펼쳐지게 할 방.

매일 나의 꿈방으로 들어와 책을 읽고 사유하며 내 우주를 만들어 나가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어서 오세요. 이곳은 꿈 방입니다.

어떤 꿈을 꾸고 싶으신가요?

세상이 모두 내 것처럼 느껴져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기 바빴던 열 살의 꿈.

앞으로의 펼쳐질 일들을 모른 채 생각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스무 살의 꿈.

울며 웃으며 우당탕탕 실수연발의 초보 엄마가 겁도 없이 아이 둘을 키우게 된 서른 살의 꿈.

이제야 지난날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하며 더욱 조심스러워진 마흔의 꿈.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떠한 가치를 빚어낼 것인가를 향한 기대와 설렘 가득한 앞으로의 꿈.

어떤 꿈을 키워가시렵니까?


그곳에 들어가기만 해도 감정을 일으키고 생각이 나아가며 마음을 동하게 하는 spot.

공간이 주는 의미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미로 가득 찬 공간이 더 있다.

바로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곳 브런치이다. 만질 수 없지만 엄연히 에너지가 존재하며 여러 가지 현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글로써 주고받는 마음의 위로와 안녕. 서로의 희망을 진지하게 바라주는 응원이 넘치는 곳. 분명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는데,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진하게 서로를 알게 된다. 내 삶을 통틀어 문자화할 수는 없지만 영혼의 흔적 같은 글을 통해 글쓴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환영합니다. 이곳은 브런치입니다.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가요?

원치 않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

실수투성이의 젊은 날을 돌이켜보는 후회의 마음.

더 잘 살기 위해 나를 용서해 보려는 마음.

주변 이를 돌아보고 사랑과 가치를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

남은 나날을 멋지게 한 판 꿈꿔보고자 하는 희망찬 마음.

어떤 마음을 전하시렵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이지만 들어오기만 해도 묵직한 징의 울림처럼 감정이 퍼지고,

마음이 은근하게 따뜻해짐을 느끼게 되는 spot.

이 역시 공간이 주는 힘이다.


공간(空間)이란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를 말한다(나무위키).

수영을 하려면 수영장에 가야 하고,

운동을 하려면 운동기구가 가득 놓인 체육관에 가야 하는 것처럼

꿈을 꾸기 위해 제일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꿈을 꾸기 위한 그 장소로 가야 하는 일이 마땅하다.

그리하여 나의 몸도 정신도 이 장소에 와있으니

제법 꿈쟁이의 겉모습은 갖춰진 게 아닐까?


그러니 꿈꾸고 싶은 그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보라.

그리고 누구 곁에 있는지 보라.

그리고 당신 앞에 펼쳐진 초원의 길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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