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사막을 걸어보겠습니다.
나는 지금 괴롭다.
흰 페이지를 앞에 두고 아무런 글자를 쓰고 있지 못하는 내 상태가 불편하고,
쓰고 싶은데 정작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불안하다.
마음을 두드린다.
"똑똑. 저기요. 제 꿈은 어디에 있는 거죠?"
"글쎄요. 저기 저 산 너머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다들 저쪽 방향으로 가던데요?"
"그곳으로 가면 무엇이 있죠?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가보지 않아서 저야 모르지요."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면 될까요?"
"우리 마을 외곽에 자작나무가 가득한 숲이 있는데 그곳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이 한분 있습니다. 그분에게 가보세요."
"어르신.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저산 너머 순례자들이 간다는 땅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곳은 괴로움과 아픔이 없는 곳이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그곳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경계가 없으며 누구라도 원하는 만큼
먹고 마시고 웃을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라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노인은 젊은이의 말을 듣고도 책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제 말을 듣고 계시나요?"
노인은 대답대신 슬그머니 펼쳐진 책의 한 부분을 보여주었다.
마흔이 넘어 다시 꿈을 꾸는 일이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일처럼 느껴진다.
머리 위 태양은 뜨겁고 몇 시인지도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신발 속으로 자꾸 모래알갱이 들어와서 몇 발자국 걷다가 계속 모래를 털어야 한다.
물통에 약간의 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시 언제 물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니 물도 아껴마셔야 한다.
타는 목마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밭이 사방에 가득하다는 두려움이다.
나는 이제 겨우 사막에 몇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벌써 캄캄한 밤이 걱정된다.
안락하고 편안한 게다가 따뜻한 침대에 누워있어도 되는데 왜 나는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 꿈꾸는 자리로 나왔을까?
꿈방(주 2)에 앉아 진득하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도 일상이 자꾸 나를 부른다.
밥을 해야 하고, 강아지 똥은 치워야 하며,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주러 들락날락 바쁘다. 게다가 오늘처럼 해야 할 이야기는 있는데 생각이 가로막혀서 마음속 글자들이 튀어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참 괴롭다. 고통스럽다. 막막한 마음으로 책장으로 눈을 돌려서 아무 책이나 펼쳤다.
맞다. 자유함.
양처럼 살지 않기 위한 용기.
양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
양이 아닌 양치기가 되어 존재 의미를 찾아가겠다는 다짐.
맞아. 내 삶의 가치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 꿈을 꾸기로 했지.
책을 읽고 마음에 물으며 지금 내가 왜 사막의 초입에 서 있는지를 불현듯 깨닫는다.
만약 사막이 없었다면 야자나무 숲을 보고 기뻤을까?
덥고 지치고 끝도 없는 불안의 언덕을 묵묵히 내 발로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야자나무. 그 너머의 오아시스.
고명환 작가는 인생의 해답은 고통 속에 있다(주 4)고 말했다. "모든 문제는 고통을 피하려 들기 때문에 생기며 고통, 시련, 역경이야말로 우리를 행복으로 데려다줄 비밀의 열쇠"라고 말이다.
또, 지담 작가는 고통을 대면하며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관점을 말했다. "고통은 견디는 게 아니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고통과 쾌락은 같이 있는 것이며, 인생 전체를 통틀어 고통의 총량이 있을진대 지금 나에게 온 고통은 지금이 그때라서 온 것이다"(주 5)라고 말하는 그녀의 단단한 마음에 내 작디작은 마음이 비쳤다.
매일 글 쓰는 건 힘들다고, 고전은 너무 어렵다고, 인문학은 너무 낯설다고 칭얼대는 내 모습이 고통을 그저 피하고 싶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수고하고 애를 쓴 뒤에 얻게 되는 결과는 값지다.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복습을 해야 시험결과는 좋아지고,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졸음을 쫓아가며 독서를 해야 지성이 쌓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줄넘기를 뛰어야 뱃살은 들어가고,
사고 싶은 욕망을 참고 돈을 모을 수 있어야 가난을 피할 수 있다.
고통을 통과한 후에 얻는 쾌락이 진짜다.
그러니 지금 꿈을 찾아가는 일이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아도 걷는 게 맞다.
내가 원하는 게 오아시스라면 고통스럽지만 가는 게 맞다.
읽고 잊어버리고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힘을 들여 독서를 하는 것
다시 쓴 내 글을 마주하는 일이 세상 창피한 일이더라도 노트북 앞에 앉는 것
졸음이 쏟아지고 멍 때리는 시간이 될지언정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꿋꿋하게 사색하는 것
이 모든 일이 나만의 오아시스를 찾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라면 기어코 가야 한다.
끝까지 걷지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서는 내가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나는
성실하게 한 발씩 걸어야 하는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고통이 가져 올 쾌락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야지.
자~ 오라. 고통이여.
천천히~ 꼭 필요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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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연금술사] 파울로코엘료, 문학동네 149쪽
주 2) 2화 참고
주 3) [연금술사] 파울로코엘료, 문학동네 25쪽
주 4) [고전이 답했다] 고명환, 라곰 109쪽
주 5) 2월 9일 브런치스토리 지담 작가 건율원 인문학 라이브 강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