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늙었나 봐. 왜 이렇게 꽃사진을 찍어?"라고 남편이 말한 적 있다.
호수 공원을 걷다가 이름 모르는 꽃들, 이름 아는 꽃들 앞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나를 보고 남편이 저만치에서 웃으며 한마디 했다. 물어봤으니 답은 해야겠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까.
'아니거든. 나 안 늙었거든?'
'아니거든. 나중에 이거 그림 그리려고 찍어두는 자료거든?'
'뭐가. 예쁘니까 찍지. 당신은 이 꽃이 안 예뻐?'
'무슨 소리. 해바라기를 바탕화면으로 해둬야 돈이 들어온다고.'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A는 B이고 B는 C이니까 A는 C다.라는 명제를 찾고 싶었는데 얼렁뚱땅 앞서가는 남편을 따라갔다.
'그러게, 왜 어른들(나의 기준으로 내 나이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꽃사진을 찍지?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꽃사진을 찍게 되었지?'
늙음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늙음과 꽃사진 사이의 인과관계는 어떤 것일까 고민해 보았다.
첫째, 나이가 들었다. 빨리 걷거나 높고 힘겹게 오르는 일보다 천천히 걷는 일이 즐겁다. 천천히 걸으니 주변 풍경이 더 잘 들어온다. 오~ 여기 예쁜 꽃이 있었구나!
둘째, 나이가 들었다.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이 싫다.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를 듣는 일이 더 즐겁다. 자연스럽게 자연을 더 찾는다. 그렇게 찾은 자연에는 초록, 빨강, 노랑 등 색색의 꽃이 만연하다. 오~ 꽃이 이렇게 예뻤구나!
셋째, 나이가 들었다. 어제와 지난달과 작년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휙휙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도대체 따라잡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 오~ 저기 저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자귀나무는 달큰한 냄새를 여전히 뿜어내고 있다니. 역시 꽃은, 또 나무는 변함이 없어 믿음직하구나!
넷째, 나이가 들었다. 늘 내 삶의 중심이었던 아이는 이제 자신의 무대를 스스로 준비하는 중이다. 모든 일정과 역할을 알려주어야 하는 매니저 같은 엄마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만큼 잔소리를 줄어들게 되었고,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야 하던 순간도 줄어들었다. 또, 친구와의 만남은 여전히 즐겁지만 이제는 나를 돌보고 나와 진득한 관계를 맺는 일이 훨씬 소중해졌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스탠드를 켜며, 책을 펼치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저기 보이는 초록.
그래, 너구나. 지금 내 눈과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이가!
나이 듦과 꽃사진의 관계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나이 들어가며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피는 사람. 그러면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
고요한 나를 만나고 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꽃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꽃이 아름다워서이다.
이제야 나는
제대로 된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꽃은 아름답다.
아주 작은 꽃 한 송이에도 나비의 날갯짓이, 꿀벌의 풍성한 춤이 담겨있다.
저보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져도 어느 색 하나 얼룩짐이 없고
꼭 필요한 만큼의 향기가 넘친다.
그러니 꽃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멋진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하여 이제 남편에게 전할 답변이 생겼다.
"봐봐. 나는 이제 꽃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