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그녀들

아이스크림이 되어 흘러내릴 것만 같은

by 괜찮은 D

이건 감자전 날씨지!

감자전 받고, 감자옹심이 날씨, 음,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은 김치전날씨.

들깨 칼국수 날씨. 막걸리에 메밀전병 날씨지!

그렇게 말하다 보면 비가 내리는 게 마치 어떤 음식을 위한 완벽한 준비인 것만 같다.

비 내리는 날에 몸과 맘이 쉽게 축축해지는 사람도 ‘오늘 oo을 위한 완벽한 날씨네’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되지 않을까.

비를 멎게 할 순 없어도 언제든 좋아하는 걸 먹게 할 수 있다는 다행. - 제철행복 중 (김신지)


작가는 소서에 태어났다고 했다.

태양력을 바탕으로 하는 24 절기에 맞춰 작가는 사부작 거리며 무언가를 한다.

입춘에는 입춘점을 치고, 우수에는 냉이를 튀기고, 경칩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한다는 그녀.


바삐 사느라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 않는지 알뜰하게 살피는 그녀는 제철행복이라는 편지를 통해 그녀만의 안부를 독자에게 건네는데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비가 오는 장마기간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한 완벽한 날씨라고 표현하는 그녀에게 나는 반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는데,

한 달에 두 번 자기가 지어놓은 계절의 행복거리를 잘 치른다면

그 마음의 힘으로 한 해를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를 따라 나도 매년 이 맘 때는 이 걸 해야지 라는 작은 소망들이 쏙 튀어나온다.


스스로에게 갇히는 날이 또 온다면 이 대화들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마음의 세수를 한다. 이 느낌을 나는 존경이라고 부르고 싶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순간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안다.

깨끗한 축하와 깨끗한 용서만큼이나 흔치 않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아주 일부만을 알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찬란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 깨끗한 존경 (이슬아 인터뷰집)


이슬아 작가의 문장은 민트맛이 난다.

쉽게 만들 수 없는 색으로 유혹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싸한 맛으로 깔끔하게 완성되는 맛이라 특별한 날 읽고 싶어진다.


그런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 네 명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데 그들의 대화에 나도 초대받아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도 그들의 대화에 감히 끼어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월호, 대구 지하철, 9.11 등 다양한 참사의 유가족을 만나고 인터뷰한 정혜윤 PD는 말한다.


슬프고 외로운 날에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세상에 나보다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에요.

용기를 말하는 거예요.

저 사람들이 내는 용기를 봐라. 저 사람들이 내는 저 큰 마음. 저 멀리 가는 마음을 봐라.

그러고서 생각해요. 저기로 같이 가자고. 저 방향이라고.


그녀들이 이야기는 하는 것은 용기, 변화, 평화, 결국은 사랑.

동시대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그녀들은 일상에 빠져있는 나와는 다른 숨을 쉬고 있는 듯해서 그저 대단해 보인다.

그녀들의 맑은 대화를 보면 참 예뻐 보인다.

깨끗하게 존경한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을 언젠가 따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저리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거울을 보듯 나를 보면 마음이 훅 내려앉는다.


어휴.

언제 책을 잘 읽게 될까?

언제 글을 잘 쓰게 될까?

어떻게 해야 나 위주의 글이 아니라 너 위주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음이 실타래 엉킨 것처럼 복잡해지면 또 다른 그녀를 만난다.


나는 내 학생들을 종종 ‘어린이’나 ‘아가’라고 불러요.

혹여 빛나는 그들이 자존심 상할까 눈치 보면서 “자, 우리 아가들. 칠판 보세요” 하고 말해요.

고등학교 때 상당한 지식을 쌓고 온 학생들이고 나보다 영어도 유창하지만,

이들은 글쓰기 앞에서 정말로 ‘아가’가 돼요. 그래서 처음 만난 날 말합니다.

우리 잘난 척은 그만 내려놓고, 첫 글자부터 차근차근 ‘걸음마’부터 시작하자고.

그러면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민애)


이 말을 하는 공간이 유치원이 아니라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의 한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이제 스무 살을 넘긴 성인의 초입에 있는 학생들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부를 수 있는 교수가 얼마나 될까? 마흔이 넘은 나도 그들 곁에 앉아 글쓰기의 걸음마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서울대라서 가고 싶은 것보다, 그녀가 있어서 서울대에 가고 싶어진다.


참, 부럽다.

침대 머리맡에는 이 책 저 책이 쌓여 탑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가만 보니 나는 굉장한 짝사랑 중이었다.


책 잘 읽고, 글 잘 쓰는 그녀들을 향한 일방적인 애태움.

길고 긴 이 짝사랑의 끝은 날 어디로 데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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