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지 않는다.

영화이고 싶은 현실 VS 현실이고 싶은 영화

by 괜찮은 D

한 달에 두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이 잘 없지만, 한 편은 지인과 함께 한 편은 가족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서로 다른 영화였지만 두 편의 영화는 내가 같은 꿈을 지니게 만들었다.


최 승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추적은 부제는 죽어간 강의 목소리다.

뉴스타파의 최승호 PD가 감독·출연하며, 17년에 걸쳐 4대강 사업의 기원과 전개, 결과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로, 장기간의 기록과 취재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의 명분(홍수 예방·농업용수 확보 등)과 실제 의도, 수행 과정의 허점 및 문제들을 차근히 드러낸다.


감독은 4대강 사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 등 다른 목적을 위한 사전 정비였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사업 과정에서의 허위·과장된 설명과 정책 집행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현장 조사, 자료 공개·분석,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사업이 가져온 환경적·사회적 피해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현실이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랐다.

상영시간 내내 한숨을 얼마나 쉬었는지, 녹조라떼가 가득한 죽은 강을 미래 후손들에게 그대로 넘겨주게 될까 봐 미안하고 두려웠다.

한 사람의 야욕으로 시작한 거대한 공사가 남긴 것은 어떠한 금액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수많은 죽음과 앞으로 죽어갈 생명들 뿐이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정치적 편향으로 인한 편 가르기가 심화된 꼴이다.


공공사업은 투명해야 하며 언론과 시민이 지속적으로 감시를 해야 정책의 실체가 왜곡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정책이 ‘국민을 위한 명분’으로 포장될 때 그 속에 숨은 이해관계나 전략을 잘 파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단기 효용성만으로 자연을 크게 바꾸는 결정을 함부로 내려서는 안된다. 자연을 복원하는 일은 복구에 큰 시간과 비용이 들며 훼손된 자연 자체로도 옳지 않다는 시사점을 영화는 던진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아는 것이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은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어른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인 것이다.

모른 척하지 말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낼 것이며, 어린 세대도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길러주어야 한다.


두 번째로 본 영화는 귀멸의 칼날 무한성 편이다. 추적은 그 큰 영화관에 오롯이 4명이 봤지만, 귀멸의 칼날 상영관은 거의 만석이었다.


영화의 핵심 무대인 '무한성'은 무잔(원조 도깨비)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상현 4 '나키메'의 혈귀술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시시각각 모양이 바뀌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미로 같은 곳인데, 귀살대원(도깨비와 싸우는 무사)들은 이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향 감각은 물론이고, 동료들과도 떨어져 외로운 싸움을 강요당한다.

무잔은 이 완벽하게 통제된, 그야말로 '죽음의 무대'에서 귀살대를 완전히 쓸어버리려 한 계획을 갖고 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압도적인 어둠, 그 한복판으로 인간들은 내던져졌다.


무한성이라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 귀살대원들은 무수히 많은 상현 혈귀들과 목숨 건 대결을 펼친다. 주인공 탄지로와 동료들, 그리고 각자의 '호흡'으로 혈귀를 베어내는 귀살대의 최고 전력인 '주'들까지, 이들은 자신보다 몇 배는 강력한 혈귀들과 치명적인 전투를 벌인다.


이 싸움이 단순히 칼과 칼이 부딪히는 액션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 것은,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화려한 연출 뒤에 숨겨진 그들의 간절함은, 바로 '인간의 선함'이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가족과의 따뜻한 아침, 친구들과의 시시콜콜한 대화, 동료의 미소,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적인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귀살대원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전장으로 몸을 던진다


왜?


바로 자신들의 죽음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고통 없는 평범한 내일'을 선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쓰러져 가는 동료의 마지막 의지를 붙잡고, 기억 속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은 피를 토하듯 절규하고 다시 일어선다. 또, 자신은 죽을지언정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끝끝내 이어져 결국은 악을 멸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일상의 행복'을 위해 생명을 던진다


영원을 살며 자신만의 힘을 기르기 위한 도깨비는 그것이 영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영원히 이어진다. 그것이 진정한 영원이라는 깨달음.

이 모든 희생은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인간 본연의 따뜻한 마음, '선함'이 영원히 이어지게 하기 위한 숭고한 헌신이다.


무한성에서 펼쳐지는 총력전은 그래서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전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절망의 끝에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야 한다.


현실 속 큰 힘을 지닌 자는 그 큰 힘을 자기의 야망을 위해 사용했고,

영화 속 큰 힘을 지닌 자는 그 큰 힘을 남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했다.


자신을 지키고자 한 힘은 한없이 초라한 주제에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을 야기했고,

자신을 버리고자 한 힘은 한없이 무한한 결속으로 모두를 위한 행복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이제 그대는 어떤 힘을 꿈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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