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진 않지만 따뜻하려고 노력 중
그녀가 말하길.
3월 첫날부터 아이들을 제대로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3월 첫날 자기소개가 끝난 뒤에는 본인의 시선에 맞추어 따라 시선 따라가기 훈련을 한다고.
내가 보는 곳을 봐야 하고, 내가 너를 볼 때 나만 봐야 하는 일.
수업시간 교사의 눈과 마주침이 있게 하기 위한 그녀만의 노하우 인지 모르겠다.
요즘따라 아이들의 머리꼭지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얘들아, 듣고 있니? 선생님은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중이니?”라고 물으면
앞자리이거나 뒷자리이거나 상관없이 선생님을 향한 뜨거운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만이 대답한다.
“저요. 제가 보고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아이 몇몇은 책상 위 도토리를 만지작 거리고, 연필을 깎으러 일어나며 갑자기 사물함에 가서 공책을 찾는다고 두리번 거린다.
아마도 그녀의 눈으로 우리 반 교실을 보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많이 허용한 무질서한 교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말한 두 번째 팁은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말을 섞지 않는 것이었다.
선생님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며 적당한 거리를 반드시 지키게 한다는 것.
교직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내가 한 번도 지키지 못한 가이드라인.
하루에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몇 번쯤 들을까? 아침인사할 때 서른 번쯤. 쉬는 시간에 열 번쯤. 수업시간에 열 번쯤.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한 아이가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를 5번이라고 치면 150번. 게다가 매 쉬는 시간 나를 부르는 아이들이 늘 있으니 하루 200번쯤 되지 않을까?
“나를 봐주세요. 여기 제가 있어요.”라고 아우성치는 그 소리에 적당히 선을 긋는 일은 아마도 퇴직할 때까지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그렇게 나는 퇴근만 하면 허겁지겁 저녁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닥난 에너지를 채우느라 영혼까지 허기가 져서.
마지막으로 전한 그녀의 비법은 학부모를 상담할 때 어떤 태도를 지닐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잘 기록해두고, 해야 할 가르침을 적시에 주면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 앞에서 철저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게 상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민원 사례를 접한 선배교사들을 보고 간접 경험을 통해 좋은 본보기를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멘트를 가지라는 것. 감정으로 다가가지 말고 논리 정연한 태도를 지닌다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이다.
술자리에서 나눈 진지한 대화였는데 이제 2년 차인 신규교사와 10년이 되는 대리급 교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교직생활 중반을 넘긴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아직도 학부모와의 통화가 떨리고, 만남이 조심스럽다. 일 년에 어쩌다 한 번 겨우 통화하는 사이인지라 대범하지 못하고 쪼그라든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속으로는 간절하다. 부디 대화가 잘 통하기를. 일방통행이 아니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지난날 그녀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척척 일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나보다 훨씬 선배였고 얼마나 어렵게 올라간 관리자의 자리인지 알기에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만 좀 답답했다. 목에 꼭 맞는 넥타이를 매고 딱딱한 구두를 신은채 하루 종일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내가 상상돼서.
집으로 돌아와 이제 2년 차인 신규교사에게 사실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한 때는 내가 잘하면 우리 반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규율과 규칙이 학습태도를 결정하고, 내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면 모두가 만족하게 될 줄 알았어요.
지나고 보니 그것은 정말 엄청나게 큰 교만이었습니다.
내가 잘해도 아이들이 못할 수 있고 부모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무사한 한 해를 보내는 날도 있는데 그렇다고 그게 내가 다 잘해서는 아니었어요. 그건 어쩌면 운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감사한 마음인 거죠.
나의 잘하고 못하는 어떤 행위. 예를 들어 무섭게 교실 분위기를 잡는 것이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나의 명확한 언어로 변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내 말짓, 손짓으로 움직여요. 머리 한번 쓰다듬으며 오늘의 기분을 묻고, 너의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슬픈지, 너의 행동이 얼마나 믿음직한지 신뢰의 눈빛으로 토닥이는 손짓에 자라납니다.
나는 배움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세상에 좋은 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공부는 내가 아니라도 가르칠 사람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태도는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을 만나는 나만 보여줄 수 있어요.
아이들을 만나세요. 아이들이 숨 쉬는 세상을 만나세요.”
내가 훌륭한 교사일까? 장담할 수 없다.
하루에도 성을 내며 지도할 일이야 참고 넘친다.
그런데 그 일. 어차피 내가 다 못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그냥 한평생 중 어떤 짧은 그 순간에 배움은 즐거웠고, 할만했고 꽤 괜찮았어.라는 말을
나와 그들이 하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과 낙엽이 가득한 길을 함께 걷는데 한 녀석이 낙엽을 그러모아 하늘 위로 던졌다.
“야, 너는 그 낙엽이 얼마나 더러운 지 아니?”라고 말하는 깔끔한 여학생에게
“야, 너는 이게 얼마나 재미난 지 아니?"라고 녀석이 답했다.
나는 그냥 이런 게 재밌다. 이런 순간이 없다면 도대체 내가 왜 교사를 하는 거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