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의 목표.
딸아이의 옷을 사러 가게에 들렀다. 원하는 모양의 치마는 없었지만 올리브 그린의 예쁜 남방을 샀다. 마네킹이 입은 남방을 만지작 거리자 직원은 얼른 옷을 꺼내주었다.
“그린이 올해 유행하는 컬러래요. 학생이 그린을 참 좋아하는구나.” 등 여러 말을 하는 틈틈이 웃으면서 마음 편하게 둘러보시고 원하면 입어 보시라는 말을 계속했다. 남방을 사서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옆 가게로 다시 들어가 치마를 둘러보았는데 다행히 여러 종류의 치마가 있어 몇 벌을 입어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빈손으로 나왔다.
그곳의 직원은 한 번도 웃지 않았고, 우리가 묻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했으며, 구경하던 한 손님이 구매하지 않고 나가자 대뜸 짜증 섞인 말을 했다. 아마 우리가 나갈 때도 그러할 테지. 그곳의 옷이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고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친절함의 힘을 느낀 경험이었다.
첫 번째 가게에서 느낀 옷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고객의 선택에 대한 조언. 그리고 따뜻한 미소는 적당한 크기의 친절이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친절은 서로에게 기분 좋은 결과를 안겨주었다. 불경기라서 재고가 쌓이면 큰 일이라는 걱정을 손님에게 전가한 두 번째 가게 사장님은 장사가 안 되는 다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길을 걷던 여행자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으로 힘을 겨룬 해와 바람의 대결이 생각났다.
바람이 어떤 바람을 후후 불어대도 여행자는 외투를 꼭 붙들 뿐이지만 해님의 따뜻한 햇살은 여행자의 외투를 쉽게 벗긴다는 이야기는 결국 다정함이 이긴다는 진리를 매우 쉽게 알려준다. 그러다 떠오른 질문은.
나는 다정한 사람인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다.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 그에게 묻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님에게 내가 다정한 지를 묻는 다면 당연히 YES가 나올 테지만 시부모님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실 것 같고 우리 반 친구들에게 묻는다면 YES가 나올 확률이 높지만 우리 가족에게 말한다면 흠.이라는 대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다정함은 실로 주관적인 것일 테니 이것은 죄다 예상이다.
하지만 아직 물어볼 사람이 한 명 남았다.
나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인가?
낭패다.
아픔의 정도를 0에서 10구간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는가를 정도로 표현한다면 3에서 4 정도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2일 지도.
연말이 다가올수록 올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매몰찬 평가를 내리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마음은 조금 더 거칠어졌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여전히 탄수화물에 대한 집착은 심하다.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아직도 주저하며 뭐가 즐거운지 잘 모르겠다.
이런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감싸기보다는 게으름을 탓하며 이것도 못한다고 스스로에게 불만을 품었으니 나는 나에게 이다지도 다정하지 못했다.
12월. 딱 한 달.
나는 다정하기로 결심해 본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다짐.
나에게.
애썼어. 열한 달이나 묵묵히 걸어왔잖아.
아름다운 마음 갖기 위해 자연을 느끼며 걸었잖아.
튼튼한 체력을 갖기 위해 계단으로 올랐잖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놓지 않았고,
생각을 넓히기 위해 책 읽기도 놓지 않았어.
네가 무엇을 하든 응원할 거야.
그러니 딱 한 달은 네가 꼭 해보고 싶은 거 해봐.
잘할 필요 없고, 실수해도 괜찮아.
그러다 결국 시도하지 못하면 또 어때?
마음이 하는 일은
마음이 정하는 것.
그렇게 보내자.
매일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