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너무 재미나잖아~
극세사 패드를 깔고 오리털 이불을 덮은 채, 따끈한 물을 채운 물주머니를 폭 안고 있으면 기나긴 겨울잠에 들어가는 곰을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 한파에 건물 사이를 누비는 성난 바람 소리가 휙휙 들려올수록 포근함은 한 술 더 얹히고, 잠은 슬그머니 다가온다.
이따 저녁은 뭐 먹지,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 볼일을 봐야겠지, 아—곧 설이구나. 이런 현실의 생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그것들이 어느 순간 장면으로 바뀐다.
바닷가 뻘에 조갯구멍이 송송 뚫려 있듯 반지하 문구멍으로 물이 들락날락 차오르는 도시, 그 도시를 지나 구름까지 닿을 듯 높은 건물들이 늘어선 곳으로 향하는 차 안에 내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는다, 생각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을.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언제나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들이닥친다는 인식과 함께, 의식은 이미 꿈의 영역으로 넘어와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곰의 동면을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잘 수밖에 없는 잠과 자고 싶어서 자는 잠의 꿈은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 때는, 솔직히 말해 꿈을 꾸고 싶지 않다.
걱정과 염려 속에서 살아온 하루 끝에 꾸는 꿈은 대개 현실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학기 초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 꿈을 꾼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결혼이 억울하다는 감정이 들 때면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거나 인싸가 되는 꿈을 꾼다. 부모님의 건강과 나이가 마음에 걸리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나오거나, 아직 살아 있는 누군가가 죽는 꿈을 꾼다.
이런 눈물 나는 꿈들은 꾸고 싶지 않다.
반대로 기가 막히게 좋은 꿈도 가끔 꾸는데, 너무 좋아서 깨고 싶지 않기에 또 꾸고 싶지 않다.
그러니 그저 아무 생각도 없는 잠, 매일의 잠이 아무런 향연 없이 조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자고 싶어서 자는 잠은 좀 다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따뜻한 동굴 속에 몸을 쏙 집어넣으면 미소가 절로 난다.
‘아이, 좋다. 이런 게 행복이지.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해.’
게으름에 대한 양심을 허물처럼 벗어놓고 웃으며 잠을 청한다. 그러면 어디선가 보았던 영화 속 장면, 소설책에서 읽었거나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것들이 꿈에서 뒤죽박죽, 다채롭게 튀어나온다.
뚜껑 없는 지프차를 거칠게 몰고 어느 호텔로 들어갔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샹들리에가 걸린 호텔 로비 한가운데, 어울리지 않게 슬러시 자판기가 서 있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파란색 슬러시가 컵에 담겼다. 한 모금 마셨는데 맛이 영 이상했다. 옆에 있던 직원에게 슬러시 맛이 이상하다고 말하자,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란색 슬러시를 내 마음대로 바꿔 담아주었다. 얼굴이 붉어질 만큼 화가 치밀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 태도도 없었다.
“성공은 태도에 달려 있는 거요. 그리고 태도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지.”
남루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슬러시를 먹으며, 게다가 듣고 싶지도 않은 명언을 날렸다. (이 꿈에서의 나는 완전한 노인이었다.) 아마 그 말이 직원의 심기를 더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요?”
“당신의 태도를 보아하니, 당신 마음속에는 내가 우습게 보인다는 얘기요.”
“슬러시가 이상하다고 해서 교환해 드린 건데, 뭐가 문제라는 거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요? 알겠소.”
잠시 뒤, 나는 다시 직원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해고요. 방금 내가 이 호텔을 샀거든. 당신은 성공할 사람은 아닌가 보오.”
캬아—멋있다. 멋있어. 이거지.
원하는 잠을 자며 원하는 꿈을 마음껏 꿀 수만 있다면, 곰의 동면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상상해 본다.
‘으아, 춥다. 배고파. 이놈의 겨울은 왜 이렇게 길어.
잔뜩 먹어 둬도 금세 허기가 지는데, 이 상태로 언제까지 눈이 녹기만을 기다려야 하지. 심심해. 외로워. 컴컴한 건 싫어. 배고픈 건 더 싫어. 아이고, 지겨워. 지겨워.’
이렇게 자고 싶지 않은 잠을 자는 것보다는,
‘대박. 이번 꿈 진짜 재밌었어. 완전 롤러코스터급 스릴이었잖아. 다음 꿈은 뭐지?
하늘에서 스카이다이빙하며 북극해를 건너볼까? 아니야, 그건 지난번에 했지. 이번에는 산소가 끊이지 않는 잠수통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 거대한 상어와 한판 붙어 봐야겠어. 상어 지느러미가 세봤자 얼마나 세겠어. 오케이, 이걸로 결정.’
이렇게 잠드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깨고 싶지 않을 테니 외로움이나 배고픔을 느낄 겨를도 없을 것이다. 최고다. 일석 몇 조인지 모르겠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이보다 더 게으를 수 없을 만큼 늘어지게 한바탕 자고 난 뒤였다.
그래서 쓸 수 있는 소재라고는 꿈밖에 없었다. 원래 꿈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천방지축, 종횡무진. 그러니 내 글이 꿈결을 조금 닮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꿈에서 시작한 글이지만, 글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 있었다.
이성의 영역으로 돌아오며 볼록돋보기로 검은도화지를 비추는 것처럼 한 점으로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