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비] 민경혜 지음
- [꽃과 나비] 민경혜 지음
춘희는 죽어서야 훨훨 날아오르는 나비가 되었다.
가는 실바람도 타고 오를 수 있는 살랑거리는 그 나비말이다.
책을 사놓고 한참을 망설였다.
작가가 등단 후 세상에 내어놓은 첫 작품이면서 가장 많은 애정을 들인 작품이라 들었다.
연분홍 꽃잎이 떨어질 적마다 작가는 철없는 계집아이의 웃음소리처럼 들렸다고 했다.
궁금하면서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은
이 책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잊혔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아픔.
위안부라는 단어가 몇 년 만에 내 귀에 들려왔다.
사회시간 우리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지역을 찾아보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탐색하라고 태블릿을 주었는데 한 아이가 위안부역사관을 택했다.
열한 살 아이이기에 조금 망설여져서 물었다.
"음, 위안부 역사관을 소개하는 일이 조금 어려울 수 있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겠니? "
나의 우둔한 질문에 아이는 답했다.
"선생님. 슬픈 역사도 역사잖아요."
아직 공교육 안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 나이였고,
게다가 전쟁과 그 상처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이의 나이가 염려스러웠고,
조그마한 일에도 책잡힐 수 있는 학부모의 민원도 우려스러운지라 여러 번 만류했지만
아이는 자기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위안부 역사관이 어떠한 곳인지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제야 나도 [꽃과 나비]를 펼쳐 들었다.
책을 읽으며 꽃잎이 떨어질 때 들린다는 그 웃음소리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가죽공장으로만 가는 줄 알았던 춘희는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야 했다.
피지 못한 꽃으로. 피지 못한 꽃들을 지켜보며.
터지지 않고 쌓아둔 울음이
춘희를 고치로 만들었나 보다.
그래서 춘희는 나비가 되었나 보다.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춘희를 나비로 태어나게 해 주어서 말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춘희가 되었다고 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춘희를 그림자처럼 쫓는 이가 되었다.
아팠겠다.
참. 아팠겠다.
속상했겠다.
억울했겠다.
마음이 찢어졌겠다.
힘들었겠다.
그 모든 슬픈 감정이 춘희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생각할 때 그곳을 생각하며 나도 함께 울었다.
얼마나 돌아가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난 5월 위안부 피해자이신 이옥선 할머니의 별세로
이제 국내 위안부 피해자는 단 여섯 분이 생존해 계시다고 한다.
우리 반 아이와 이 책이 아니었으면 놓칠뻔했다.
뻔뻔한 사람보다 더 부끄러울 뻔했다.
처음부터 모르는 척하는 사람보다
잊은 사람에게 더 서운한 법이니까.
글을 읽다가 한 문장에 시선이 갔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바란다.
세상의 모든 춘희들과
나비가 되어 날아갈 춘희들을
기억하고 기억해야겠다.
분홍꽃이 흩날릴 적마다
얼굴 한가득 웃음기 가득한 춘희를 기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춘희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