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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Oct 11. 2022

'미루기'가 창의성에 도움된다고요?

창의성 기르기(1)

 


뭐, 새로운 거 없나?


 회의 자리에서 가장 듣기 무서운 말입니다. '새로운 게 없나?'라고 자문할 때 기발하고 엉뚱한 아이디어가 바로바로 떠오르면 좋겠지만 현실은 어떠한 틀에, 혹은 판에 박힌 생각만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업무 스타일의 강점과 약점이 제각각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신규 사업 아이디어 내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꾸 익숙한 것만 떠올리다 보니, 정말 창의력이 필요한 순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반면 같이 회의하다 보면,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팀원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그런 동료들이 참 부러울 때가 많지요. 회사 업무를 할 때뿐 아니라,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필요로 할 때가 많습니다. 글감이 고갈될 때, 소재는 정했지만 어떻게 전개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히는 순간 '좀 색다른 길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선천적으로 창의성이 높지 않더라도, 후천적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은데요. 그동안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창의성을 기르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 그중 특히 도움을 받았던 책이 있습니다. 애덤 그랜트 작가의 '오리지널스'라는 책입니다.


 책에서는 '미루기'가 창의성 발휘에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미루는 동안 생각이 무르익을 수 있다는 건데요. 아예 옆으로 치워두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필요한 문제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죠. 고민되는 생각을 항상 기저에 담아두고 있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갑자기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장소나 환경을 바꾸었을 때 불현듯 놓치고 있던 부분이나 새로운 생각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요. 문젯거리를 묵힌 채(완벽히 잊는 게 아니라 가슴에 담아둔 채) 일상생활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번뜩인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일종의 아이디어 숙성 시간인 셈입니다. 


 일례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들 수 있는데요. 링컨은 이 연설문을 준비할 시간이 2주가량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행사 전날까지도 연설문의 절반 정도밖에 작성하지 못했고요. 결국 링컨은 마무리 단락을 연설 전날 밤에야 썼고, 당일 아침에서야 최종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쓴 원고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명연설로 꼽히고 있지요. 이렇게 무언가를 미뤄서 더 좋은 결과물을 낸 사례에 대해 심리학자는 '완성된 작업보다 미완성 작업에 대해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는데요. 사람들은 작업이 일단 마무리되면,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생각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을 중단하지 않고 내버려 뒀을 경우에는, 그 일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뭔가가 떠오르는 경험을 하는 거지요. 


 저도 게으른 편이어서 평소 일을 많이 미루는 편이라, 이 말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업무 역시 거의 미룰 만큼 미뤘다가 하는 편인데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룬 만큼 '마감의 기적'이 생겨서 그 도움을 쏠쏠히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이디어는 여기저기 기웃대는 순간순간 빼꼼히 머리를 내밉니다. 풀리지 않는 고민이나 아이디어가 다른 일을 하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하는데요. 그러다가 문득 생각지도 못한 해결 방안이 떠오를 때면 유레카를 외치기도 합니다. 미루기가 창의성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동안 마냥 쓸데없는 짓을 했던 건 아니었구나,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미루기의 또 다른 이득은 '즉흥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겁니다. 미리 계획을 세우면 이미 만든 프로세스를 고수하여, 갑자기 등장할지 모르는 창의적 가능성을 배제하게 됩니다. 실제로 창의적인 건축가들이 다른 건축가에 비해 훨씬 즉흥적인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즉흥적이라는 것은 훨씬 유연하다는 말도 되기에, 경직되지 않고 융통성 있는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렇게 나름 미루기에 대한 정당성(?)은 확보했는데요. 문제는 이 미루기가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많이 미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루면서도 마음이 늘 편치는 않습니다.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하기 싫다... 아, 진짜 하기 싫다..'를 연발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야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곤 하지요. 그래서 사실 쉬면서도 마음 편하게 쉬기 어렵습니다. 가슴 속 언저리에는 늘 돌덩이(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들어앉은 것 마냥 불편할 때가 많거든요. 미루다 못해 마감 직전에 우당탕탕 끝내고 나서 '다신 그러지 말자'라고 다짐하지만, 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그러고 마는 스스로에게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 미루기가 창의성에 효과가 있다는 이론적인 근거가 있다는 걸 안 이상, 마냥 버리기는 아쉬운 방법이기도 한데요. 계속 가지고 가자니 더러 피곤할 때가 있기도 하여, 적당히 밸런스를 조절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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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글도 글감만 생각해두고, 쓰기 싫어서 한 달 정도 미루다가 이제야 매듭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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