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희 Apr 15. 2024

창작에 노력보다 재능이 중요하다?

<메이커스 랩>



 책을 읽기 전 가장 끌렸던 건, 책 표지 띠지의 추천사입니다. 김중혁 소설가의 "지금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모든 사람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는 말에 후킹이 되었지요. 

 책은 <메이커스 랩>이라는 제목답게 창작에 관한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룹니다. 글쓰기에서 그림, 디자인, 연극, 싱어송라이터 등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라,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개인적인 몰입도는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전반부는 흥미로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리 공감되는 부분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극 연출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아티스트 사례를 알게된 점은 유용했습니다. 창작이라는 것이 어쨌든 분야가 달라도 큰 틀에서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디자이너의 스케치는 소설가의 초고와 닮아있다는 구절이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문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예술가의 천재성

역사적으로 예술가에 대한 인식의 틀을 형성해 온 주요한 비유는 천재, 광기, 신성한 영감이다. …… 우리는 천재성에 푹 빠져 있다. ……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비범한 존재를 믿고 싶어 한다. …… 나는 그저, 천재라는 개념이 우리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위대한 작품과 혁신의 원동력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게 가로막을 수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사실 저 역시도 예술가는 천재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예술을 할 수 있고, 특출난 능력이 없으면 시작도 말아야 한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종일관 책에서는 타고난 능력보다 만들어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이전에 읽었던 책 <그릿>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능력을 만드는 것은 선천적인 비범함이 아닌, 꾸준한 노력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위안을 받습니다.



2. 창조론 vs 진화론

거의 모든 예술가는 그들의 창작 과정을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에 가깝게 설명했다. …… 처음에는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저 '다루고 싶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마음속에 굳건히 품고 있었을 뿐이다. …… 그 질문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였다. '곰'을 연출했을 때처럼,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알아내려면 일단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저자는 이와 함께 학과장 직책을 맡았을 때의 경험을 예시로 듭니다. 아무런 확신 없이 새로운 직책을 맡았지만, 막상 일을 하고 조직을 이끄는 책임을 지면서 본인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었다고 표현하지요. 그러면서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일은 처음엔 불안을 동반하지만, 결국 만들어지며 무언가 그럴듯한 결과물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시도는 하기 전에 불안과 의구심을 동반하지만, 시작하고 나면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을 내게 선물해 줄 때가 많았습니다. 글쓰기가 그랬고, 다른 새로운 시도들이 그랬습니다. 하기 전에는 강렬한 저항에 부딪히지만, 하고 나면 '괜히 했어.'라기보다는 '하길 잘했어'일 때가 많았지요. 이러한 태도는 비단 창작의 영역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대부분의 일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뮤즈의 환상

천재성과 함께 예술가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신비로운 영감이다. 영감은 신성과 결부되기도 한다. …… '뮤즈'라는 용어가 함축하는 바는 명확하다. 창조성은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선택받은 존재만이 받을 수 있는 신성한 힘이라는 것이다. …… 그들은 특별하며,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능력이 있고, 그들의 창조적 작품은 끈기와 투지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신비한 재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뮤즈에 대한 환상'을 꼬집는 말입니다. 저자는 번뜩이는 영감보다 끈기와 투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소설가 '에이미 벤더'의 사례를 소개하는데요. 그녀는 모든 작업에 강제적으로 시작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무조건 한 시간 반 동안은 책상 앞에 앉아 있기로 결심한 건데요. 글을 쓰든 안 쓰든 정해진 90분을 신성하게 지킨다고 합니다. 예전에 소설가 김영하도 이런 말을 한적 있습니다. 뮤즈란 매일 같은 시간에 온다고……. 특별한 영감을 기다리며 글을 쓸 것이 아니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작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4. 글쓰기와 워라밸

티게이의 삶은 곧 음악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는 '음악에 사로잡혀' 지낸다. …… 창작가들은 작업실, 연습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창작에 관한 실마리를 찾거나 영감을 받는다. …… 티게이에게는 일상과 창작 사이에 실질적인 구분이 없다. 


 작곡가이자 가수 '힐렐 티게이'의 인터뷰입니다. 창작자에게는 일상과 작업 사이에 딱히 실질적인 구분이 없다는 건데요. 이 구절에 문득, 일러스트레이터 '루이스 멘도'의 인터뷰가 기억났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 취미가 없다는 루이스 멘도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고, 눈길을 끄는 것이 보이면 바로 아이패드를 꺼내 든다고 합니다. 그는 워라밸에 대해 이렇게 반문합니다. '대체 뭐가 일이고 뭐가 라이프일까요?' 

 저 역시 평소 일상생활을 하면서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곤 하는데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은 모르겠지만, 창작에 있어서는 작업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로,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매번 느끼는 능력의 한계치에 좌절하고, 이게 맞나 끊임없이 고뇌하는 순간의 연속이지요. 그때 이렇게 선배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위로를 받곤 합니다. 대단하게만 보이는 그들도 나처럼 느끼는 순간이 있구나, 나만 좌절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또다시 글 쓸 힘과 용기를 얻게 되지요. 



.

.

.


 이따금 거대한 재능의 장벽을 느낀다면,

 자꾸 포기하고 싶은 생각과 마주한다면,

 이 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어보는 건 어떨까요?


 더불어 책 본문에 인용된 '척 클로스'의 말이 도움 되기를 바랍니다.



영감은 아마추어를 위한 것이다.
프로는 그저 자리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끌리는 글을 쓰고 싶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