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언젠가부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결혼하지 않은 지금, 막연히 혼자 나이 들어가는 삶은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결혼하려고 필요에 의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만남의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만난다 해도 결혼까지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김희경 저자의 <에이징 솔로>는, '혼자 나이 들어도 괜찮은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4050 비혼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여러 형태의 삶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책인데요. 솔로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들을 실제 사례를 통해 조목조목 깨뜨립니다. 다만 비혼 여성의 사례가 대부분인지라, 남성이나 비자발적 솔로의 경우 살짝 공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혼자 사는 것에 막연하게 불안감이 있거나,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궁금하셨던 분들은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혼자 사는 삶은 취약하다!?
결혼의 편에 서서 혼자 사는 삶을 바라보며 취약하다고 단정짓는다. 마치 결혼이 표준이자 정상이고, 비혼은 일탈이자 비정상인 것처럼. …… 내가 부러 의식했다기 보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나의 자기 인식을 촉발했다고 해야 맞겠다. ……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요즘 결혼율이 떨어지고, 1인 가구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결혼이 표준이자 정상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결혼 여부를 첫 만남에 묻거나,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지요. 나이가 들수록 그 이상하다는 시선은 더 짙어집니다.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다가도, 주위의 불쾌한 시선이 자기 인식을 촉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시선은 '내가 무언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게끔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2. 결혼하고 출산해야 성숙해진다!?
자식을 여럿 둔 중년과 노년 중 미욱하고 한심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고리타분한 말이 어딨어요. …… 누굴 키우고 돌보고 다른 존재를 위해 희생해봐야만 인생의 깊고 중요한 가치를 알게 되는 거라면, 나는 이미 하고 있어요. 늙고 아픈 가족들을 봉양하고 있고, 고양이들도 키우잖아요. 그리고 사람이 인생의 깊은 맛을 꼭 알아야 해요? 세상의 관점에서 내가 철없어보인다 한들 그러면 뭐 어때요? 잡혀가지 않을 정도로만 상식을 지키고 살면 되는 거죠.
더 살아보면서 삶의 가치, 깊은 경험이 하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좋은 이야기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하나뿐인 '가장 깊고 가치 있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성숙도와 결혼 여부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치 나이 들어 솔로인 사람은 어딘가 비정상적이거나 미성숙하다고 인식하는 부류가 여전히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해야 비로소, 인생에서 가장 깊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결혼과 출산이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경험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홀로이면서 함께' 행복하려면?
누구나 인생의 어떤 구간에서는 솔로다. 성인이 될 때 대부분 솔로인 상태로 세상에 나아가고, 삶을 마무리할 때도 많은 이들이 혼자가 된다. 결혼과 가족을 중심에 두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혼자 사는 삶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 온전히 '홀로'도 아니고 늘 '함께'도 아닌, '홀로'이면서 '함께'하기. 단독자로서의 영역을 지키면서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기. 이는 삶을 꾸리고 관계를 맺을 때 늘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방향키와도 같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아니면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든,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맺은 친밀한 관계가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서로 돌볼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미래 가족의 모습이 되는 걸 보고 싶다.
나이 들수록 혼자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꽤 생겨납니다. 건강과 관련된 돌봄 문제,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 등 지나치면 생존의 위협에 이르기도 하지요. 책에서는 '공동 주택에 모여 살기', '순환 사령관 시스템(비상연락망 체계 구축)'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혼자 살아가더라도, 적당히 연결된 사회적 관계망은 필수라고 느낍니다. 물리적 연결망뿐 아니라, 감정적 연결망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나눌 사람이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건데요. 예컨대 직장에서의 힘든 일은 가족보다 오히려 동료와 나누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렇게 감정 관계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더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족' 중심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나(I)'와 '사람들(People)'에 좀 더 가치를 두는 서양과 달리, 한국은 개인과 사회 문제보다 '가족'에 좀 더 큰 가치를 두곤 하지요.
그래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1인 가구 수가 40%에 육박해가는 요즘, 혼자 사는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지요.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다양한 가구의 유형이 일반화된다면, 언젠가 미혼이나 비혼보다 '결혼'의 상태가 더 희귀해지는 때도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트렌드가 변화할수록 사회 보편적인 인식과 제도적인 지원 또한 다양한 삶의 유형에 맞게 설계되어 갈 것이고요.
혼자 살든, 함께 살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꾸며, '바람직한 솔로'의 방향이라고 느낀 구절을 공유하며 글을 마칩니다.
나는 이 세계에 소속돼 있어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분리돼 있어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