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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May 07. 2024

핸드폰을 오래 보면 왜 기분이 안 좋을까?

<도파민네이션>



 핸드폰에 중독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중독되었던 건데요. 퇴근하고 누워서 핸드폰 영상 시청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지라, 한참을 보다가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잠 못들고 나면 다음날 출근에도 지장이 있었지요. 수면 리듬이 엉망이 되어 피곤한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낮에도 각성하려고 커피를 들이부었습니다. 밤에는 영상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니 낮에 커피를 많이 마시고, 다시 밤에 잠을 못 자고, 잠이 안 오니 영상을 찾아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지요. 당시에는 중독인 줄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일종의 중독 상태에 빠져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책 <도파민네이션>을 봤더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애나 렘키(Anna Lembke) 저자의 <도파민네이션>은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유용한 내용이 담긴 책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중독에 빠지고 헤어 나오기 힘들어하는지,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도움이 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주고 있지요. 비록 외국 사례(약물 중독 등)에 초점이 맞춰져서 공감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새로 알게 되는 내용이나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측면도 많아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중독에 대하여

중독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소비,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중독을 일으키는 대상을 구하기 쉬울수록 시도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중독된 시기에, 수면 리듬이 완전히 망가지고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있음에도 쉽게 멈출 수 없었습니다. 책에 제시된 중독의 정의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지속적이고 강박적으로 소비하고 활용했지요. 중독 일으키는 대상을 구하기 쉬울수록 시도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말처럼,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핸드폰은 늘 가까이에 두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시도한 방법은 의도적으로 물리적 제한을 두는 겁니다(저자 역시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넷플릭스는 구독을 해지했고, 유튜브는 자동 알고리즘 뜨는 것을 없앴지요. 그랬더니 확실히 시청 시간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또한 시간적 제한을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휴일 전날만 보거나, 보는 횟수를 정해둔다던지 하는 나와의 약속을 정하는 건데요. 자세한 방법은 추후 다시 포스팅하겠습니다.



2. 고통에 대하여

고통은 어떤 형태든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아파서만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신경 손상을 남겨서 완치를 해도 고통을 느끼도록 뇌를 자극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고통이 마냥 나쁘기만 한 걸까요? 이전에 어느 책에서 한센병에 대해 다룬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한센병의 증상이 심해시면 고통에 무감각해져서 신체 부위를 막 다루기 때문에, 상처도 많이 나게 된다는 것이었는데요. 우리 신체가 고통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다 이유가 있다는 구절이었습니다. 마치 치과에서 구강 마취를 하면, 감각이 없어서 입 안을 쉽게 깨물게 되는 것처럼요. 

 신체적인 고통이 필요할 때가 있듯이, 정신적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행복하기만 하고 마냥 즐겁기만 한 인생은 없습니다. 성장통처럼 꼭 필요한 고통 역시 존재하죠. 고통을 수용하지 못하고 회피하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회피하는 그 당시만 잠깐 모면할 뿐(마음은 불편한 채로), 시간이 지나면 허무함과 괴로움이 몰려오게 되지요.



3. 고통과 쾌락의 상관관계

오랫동안 과도하게 중독 대상에 기대면, 쾌락-중독 저울은 결국 고통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우리의 쾌락 경험 능력이 떨어지고 고통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면 우리의 향락적(쾌락) 설정값도 바뀐다. 
고통에 간헐적으로 노출되면 본연의 쾌락 설정값은 쾌락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고통에 덜 취약해지고, 쾌락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 고통이 우리가 쾌락에 지불하는 대가인 것처럼, 쾌락 역시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이다. …… 고통 후에 쾌락이 온다는 것을 배워도 이를 아주 쉽게 잊는다. 


 특히 '쾌락과 고통은 쌍둥이다'라는 말과,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된다'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영원한 쾌락도, 영원한 고통도 없다는 말인데요. 쾌락도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야기할 수 있고, 고통 역시 쾌락이라는 보상을 동반한다는 사실에, 묘하게 위로를 받습니다. 쾌락이 계속되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그 나름의 고충이 뒤따르고, 고통을 겪는 순간은 괴롭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은 경험한 적이 많습니다. 운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운동 센터에 가기는 힘들지만 끝내고 나면 상쾌한 마음이 들고 기분 좋아지지요. 새벽 기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정말 싫지만, 막상 또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고통과 쾌락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4. 지루함의 순기능에 대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약물 중독 같은 극단적인 사례만 있지 않다. 현대인은 사소한 불편조차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 현재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놀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저 역시 '지루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가용 시간이 생기면 남는 시간을 무얼로 채워야 하나 망설이곤 했습니다. 고민 끝에 대부분은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게 디지털 기기를 오래 사용하고 나면, 딱히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영상을 보거나 SNS를 하는 동안, 뇌가 소모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죠. 진정한 쉼이 아니라, 계속 각성된 상태로 두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대부분 아무 생각하지 않는 와중에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 멍 때리기나 주변을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지루함에 좀 익숙해져야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살아가면서 인생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 대부분의 문제는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일어나곤 했습니다. 아무리 좋고 편한 것이라고 해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과잉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다른 한쪽에서 결핍이 생기게 되지요. 우리가 중독이라 일컫는 것들도 적당히만 즐기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SNS도, OTT 서비스도, 유튜브 영상들도, 스트레스 해소와 정보 습득 등 그것으로 인해 얻는 이점이 충분히 많으니까요. 


 주변에 온통 재미있는 것과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적당히 넘치지 않게 즐기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심을 잡고 일상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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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무언가에 중독되어 본 적이 있거나 

지금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도파민네이션>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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