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희 May 20. 2024

죽음을 적극적으로 맞이한다는 것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일상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터부시되곤 합니다. 왠지 무겁고, 심각해지고, 피하고 싶어지는 말이죠. 가급적 나와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닥치지 않았으면 하고, 어쩔 수 없이 오더라도 최대한 천천히 마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피하거나 터부시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부검 전문의 유성호 저자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입니다.


 저자는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아직 내 일이 아니라고만 느꼈던 죽음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죽음을 당하는 것 vs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인생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인간다운 죽음이란 일방적으로 병원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행사하는 것 …… 사실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두고 대화하지 않는다. 


 은연중에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아서, 나와 가족과는 관계가 없는 일처럼 느껴지지요. 주변에서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도 당황스러움입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자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기에 비로소 의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생전에 해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에서는 미리 유언을 생각해두거나 임종 노트를 써보는 것을 추천하는데요. 사전에 내가 원하는 마지막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것은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2. '죽을 권리'에 관하여

죽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의제는 '죽을 권리'다.
'이게 과연 부모님이 원하시는 마지막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을 하나의 여정 또는 작품이라고 본다면 죽음은 마지막 종착지 또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 내 인생을 내가 끝내야 하는데, 인생의 결정권이 생판 모르는 의사나 가족에 의해 행사되고 있다. 

 

 '만약 내가 의식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기계가 멈추면 인생이 멈추는 삶, 내 의지로 행동하지 못하는 삶, 과연 살아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남아있는 가족 입장에서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정작 당사자로서 그게 진정 원하는 삶일지, 어쩌면 남겨진 자의 욕심은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자는 '죽을 권리'에 관해 말하며, 실질적으로 죽음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스스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인데요. 우리에게 거부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죠. 연명 의료를 멈추려면 가족 두 명과 의사 두 명의 의사표명이 필요하다는 것도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뒤에 수습하기는 늦으므로, 미리 가족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이런 절차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3. 품위 있는 죽음이란?

품위 있는 죽음이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상태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이란 특별하지 않다.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좋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상태의 죽음이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좋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하는데요. 저자가 제안하는 열심히 사는 삶이란 아래와 같습니다.

1.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그리고 자주 해야 한다.
2. 죽기 전까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일, 즉 꿈꾸고 있던 일을 해야 한다.
3. 내가 살아온 기록을 꼼꼼히 남겨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겨줄 자산이 있어야 한다. 
4. 자신의 죽음을 처리하는 장례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모으기 위해 경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5. 지금 건강하다면 건강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자들을 위한 배려 어린 구절입니다. 자신의 장례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경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남은 이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왔다간 흔적을 정리할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이었죠. 살아온 기록을 꼼꼼히 남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산으로 남겨준다는 점도 뜻깊은 일이고요.

 어차피 떠난 이후의 일이라 생각해서 사후의 일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이 또한 미리 생각해봄직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만 관심을 가졌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의 죽음, 혹은 가족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원하는 장례 절차나 유언 내용도 막연하게나마 그려보았습니다. 


 태어날 때도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듯, 죽음 역시 내 의지로 맞이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두고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오늘, 이 책을 계기로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해보는 건 어떨까요?


 책에서 언급된 소설가 이문구 선생의 유언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내가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 손잡고 산소 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장하지 마라.
화장 후에는 보령 관촌에 뿌려라.
문학상 같은 것 만들지 말고 제사 대신 가족끼리 식사나 해라.
나는 이 세상 여한 없이 살다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