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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May 27. 2024

불안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알랭 드 보통 <불안>



 오늘 소개할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입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어서 이미 읽어 본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저는 몇 년 전에 읽고 최근 생각나서 다시 읽어본 책입니다. 역시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아니 여러 번 읽을수록 더 좋다는 것을 알게해준 책이랄까요.


 책은 크게 두 가지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불안에 대한 '원인'과, 그에 대한 '해법'을 다루지요. 저자는 크게 불안의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구분하고 있고, 해법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비교와 불안

키 작은 사람이라고 해도 고만고만한 사람 사이에 살면, 키 때문에 쓸데없이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집단의 다른 사람들의 키가 약간이라도 더 자라면, 갑자기 불안에 빠지고 불만족과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키 1밀리미터라도 줄어든 것이 아닌데 말이다.


 저자는 불안의 이유 중 하나로 비교하는 마음을 꼽습니다. 그리고 비교와 질투의 대상은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하는데요.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면서요. 셀럽이나 지구 반대편의 유명인에게는 그다지 질투심이 느껴지지 않지만, 동창이나 지인에게서 오히려 묘한 질투심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그룹 내에서 좀 더 잘 나가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기도 합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이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라는 저자의 말은 어쩐지 씁쓸합니다. 



2. 세속적 열망이 주는 괴로움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이것이 우선순위를 엄청나게 왜곡하여, 물질적 축적 과정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로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상으로 숭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떠받들여지고,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처럼 표현이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많은 부를 소유하고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지는지도 모릅니다. 직업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몇몇 소수의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갖고 추앙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애씁니다. 그 직업의 부정적인 측면은 간과된 채, 무작정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지요.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 모든 직업에는 명과 암이 있습니다. 마냥 좋기만 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지요. 이를테면 작가는 우아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감을 받아 자유롭고 여유롭게 글을 쓸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골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문장을 억지로 쥐어짜며 고군분투하는 나날의 연속이지요. 이 과정에서 겪는 고독과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좋다고 일컬어지는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3. 기대를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씬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우리는 말한다. '다행이야! 그런 환상들은 이제 사라졌어.' 


 저자는 불안의 원인 중 '기대'를 언급합니다. 기대가 높을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불안이 높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책에서 인용한 '제임스의 방정식'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자존심이란 내세운 것 대비 이룬 것의 등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거나,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거죠. 기대와 요구를 포기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관점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계층이 결정된 귀족사회에서는 기대감 자체가 없기에 불안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날 때부터 물고 태어난 수저가 바뀔 일은 없으니까요. 저자는 오히려 노력하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민주사회로 돌입하면서 사람들의 불안이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주어진 무제한의 기회 속에서 실패하게 될 때 울화가 생기고 증오심이 발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선택지가 많은 것이 때로 독이 될 수 있겠구나, 느낀 지점이었습니다.



4. 성공의 길은 여러 개?!

부르주아지는 상업적 성공과 공적인 평판에 기초하여 지위를 부여한 반면, 보헤미안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당연히 더 중요했던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감정의 주요한 저장소인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 순교자적 인물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또는 여행이나 친구와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안정된 정규 직장과 사회의 존경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예로부터 '예술하면 배고프다'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일부 특출나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술가는 생활고와 싸우기 마련인데요. 저 역시 글만 써서는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기에 아직까지 직장과 병행하고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성공보다 지속적으로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딜레마에 빠지고는 하는데요. 유명한 작가가 아니고서야 세속적인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삶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헤미안들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삶이야말로 외적인 품위는 부족할지 몰라도, 최고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며 살아갈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둘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것인지는 온전히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있죠. 어느 길을 선택하든 정답은 없지만, 성공에 하나 이상의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불안과 맞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5. 불안을 타파하는 법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 광대한 풍경 역시 폐허와 마찬가지로 불안을 다독여주는 효과가 있다. ……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적 위계 내에서 우리가 하찮다는 느낌은 모든 인간이 우주 안에서 하찮다는 느낌 안에 포섭되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치유책으로 세계에 거대한 공간을 실제로, 혹은 예술작품을 통해 여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비등비등한 구성원 사이에서 안달복달하며 서로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려 버둥거리는 것보다, 그보다 더 광활한 것 내에 머문다고 느낀다면 이 불안이 해소할 수 있다고 말이죠. 신의 경외감을 느끼는 것 또한 이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세계적 명성과 부를 얻은 쉰한 살 때, 자신의 가치나 신의 가치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에 따라 산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세속적인 불안한 욕망을 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하지요. 그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이러한 야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심이 생겼고, 결국 그의 의문을 가라앉힌 건 신의 존재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여생을 예수 그리스도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게 되지요. 

 이 구절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와 책 <코스모스>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존재가 이토록 광활한 우주에서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할 때, 지금 현세의 고민이 얼마나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책에서는 위의 구절 외에도 다양한 불안의 원인과 해결책을 여러 관점에서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불안의 쓸모에 대해 언급하죠. 철학적인 관점에서 '불안'은 그 종류에 따라 쓸모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생존에 적당한 불안은 도움이 됩니다.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불안으로 인해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미래의 불안이 인생에 동기부여로 승화되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낼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에 지나치게 압도되어 우울해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으로 수용하고 이를 발판 삼아 성장에 활용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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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불안을 느낀다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해해보고 싶다면,


알랭 보통의 <불안>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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