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솔직하기
저는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마음에 담아두는 게 많았죠. 주변에서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 일단은 가슴에 담아두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다면 속으로 삭힌 후에 조심스레 꺼내놓고는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가장 부러웠던 친구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바로바로 얘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너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조용히 푸념하기도 했지만, 그때그때 본인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할 말 다하는 친구가 참 부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불현듯 이렇게 살아서야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죠.
그러고 나니 신세계가 열리더군요. 이 좋은걸 왜 하지 않고 살았을까... 되짚어보니 그동안 제가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둔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기 싫어서입니다.
일단 '내가 이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누군가와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미움받는 것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죠.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미움받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가 원치 않아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저 역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견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둘째, 얘기를 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 있어서 어차피 용기를 내서 얘기를 해도 상대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상대가 바뀌지도 않는데 굳이 내 에너지만 소비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았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내가 참고 말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때로 용기를 내기 싫어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얘기를 해서 바꾼다는 건 꽤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럴 때면 어차피 얘기해도 상대는 바뀌지 않을 거라며 자기 합리화하기 일쑤였죠.
셋째, 상대와 부딪혀서 의견 조율해야 하는 과정이 귀찮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담아두면 갈등 생길 일도 없습니다. 나만 참고 지나가면 되거든요. 하지만 이를 겉으로 표출하는 순간 상대와 의견 조율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아집니다. 상대와의 마찰과 갈등을 빚어가면서까지 의견 조율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내가 먼저 의견 제시를 하면 그건 내 과제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참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부담스러우니 대충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싶었던 거죠.
굳이 갈등을 만드는 것조차 귀찮았기 때문에 회피하려 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조금씩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합니다. 필요하다면 솔직하게 그 감정을 표현하려 노력하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기분이 좋으면 기분이 좋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좋으면 좋다고,
이렇듯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부분이구요.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꼭 표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는 잃는 법.
물론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약간의 싫은 소리를 듣는 것 혹은 예전보다 좁아진 인간관계죠. 주변에 적이 생길 때도 있구요. 처음에는 누가 나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 사람 비위까지 맞추고 싶어서 애쓰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눈치 보며 참지 않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예전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는 거죠.
누군가 선을 넘을 때도, '그거 선 넘는 거야.'라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기분을 상하게 하면 기분이 상했노라고 얘기를 해야 하구요. 상대 기분 헤아리는 것만큼, 내 마음 돌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마음에 담아 두면 내 속만 터질 뿐입니다. 가급적 마음에 담아두는 건 덜하고, 밖으로 표출하세요. 매번 생각과 의견을 가감 없이 피력하는 법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것이 좀 더 수월해집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결국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일뿐더러, 가능하다고 해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사람 가면 속 모습을 좋아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일까요? 의견을 표현하고 호불호를 표현해도, 하나의 주체로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만이 진정한 내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나를 드러낼 때 상대 역시 더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제 곁에 있는 사람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더 이상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이유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
.
.
.
지금 누군가에게 차마 말 못 할 일로 끙끙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표현하세요.
그럼으로써 훨씬 더 후련해진 마음과 마주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