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눈치 보는 국가 1위에서 어떤 형태로도 win-win하기
최근에 쿼카델리하우스 빌라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우리의 다정한 이웃, 쿼카가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 중간층에 사시는 할아버지께서 1층 계단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셨는데,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찧으시고 의식을 잃으셨다. 가엾게도 그 장면을 발견한 이는 느지막이 출근 중이던 쿼카였다. 쿼카는 피 한 방울만 나도 무서워한다. 쿼카는 바로, 잠겨있던 현관 도어를 열고 달려가 앞 주차장에서 차를 타려고 하던 2층 청년에게 “도와주세요! 119에 신고해주세요!”를 외치고 CPR을 시행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번갈아 가며 CPR을 하면서 의식이 잘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께 말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배우자인 중간층 할머니를 불러 내려오시고, 구급차에 이송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할머니는 쿼카의 손을 부여잡으며 “아이고! 고마워서 어떡해,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고 구급차를 함께 타고 가셨다. 다행히 할아버지께선 무사하셨다.
다시 생각해봐도 평소 비위가 약한 쿼카가 이 모든 일을 해냈다. 아델리는 마음 깊이 대단하고 기특하다. 벽과 바닥에 흩뿌려진 피 웅덩이 바다를 다 닦고, 구급요원이 할아버지의 찢어진 머리로 식염수를 붓는 것도 다 봤을 텐데. 상황을 설명해주고 칭얼거리다 말았지만 한참 쿼카의 머릿속에 그 장면이 떠돌아다닐지 걱정이다. 차라리 아델리가 그 상황을 마주쳤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엄청난 상황을 마주한 쿼카가 히어로처럼 침착하고 멋지게 구조를 해냈다는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 쿼카가 간호조무사 자격증과 긴급구조 교육을 철저히 받은 것도 할아버지께 행운이었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쿼카와 함께 살길 잘했다고 속으로 혼자 뿌듯해하는 아델리다.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아델리나 쿼카가 쓰러진 상황이 그려졌다. 쿼카가 자주 아플 때에 아델리가 응급실에 쿼카를 데리고 간 전적이 있다. 그때 난감했던 건 역시, 많은 1인 세대주들과 동거인들이 겪는 문제였다.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 서류에는 친구도 동거인 항목도 없다. ‘지인’이라고만 쓸 수 있는데, 이처럼 공적 서류에서 분류되지 않는 관계에 놓인 조립식 가족들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쿼카델리는 의료 보호자로 서로를 등록하기 위한 준비를 착착 하고 있다.
지정한 동반자에 대해서 소득세 공제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의료 기록 열람권 등을 허용해주는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20년부터 논의되어온 법안인데 슬프게도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생활동반자법은 성별과 관계없이 성인 2명이 서로를 파트너로 등록하면 재산상속이나 사회보장 등 기존 결혼 관계와 동등하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로,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사회를 구성하는 법적 단위로 인정하자는 게 취지다. 이 법이 제정되면 생활동반자는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있다. 청년들에게 대안 결혼과 대안 가족의 길을 열어주자는 법을 쿼카델리도 지지한다. 쿼카델리는 공과금도 세금도 집세도 다 혜택 알짤없이 우리 둘이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기대수명은 100세인데, 그 100세 동안 의료의존수명 비율이 수명의 반이 넘는다. 기존 전통적 가족의 패러다임이 허물어진 것처럼 조립식 가족의 정의는 빠르게 바뀌어간다. 인간이 누구와 함께 살고 행복을 추구하며 의지하고 살아갈지 예측하기 어렵고, 더더욱 다양해지겠지.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다.
별것 아닌 농담과 애교에 서로 웃고 쓰다듬어주고, 서로의 취향을 넓히는 프로그램 감상을 함께 하며, 기운 빠지는 하루의 끝에 나를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은 그 어떤 메리트로도 대체할 수 없다. 누군가를 만나서 친해지고 알아가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 무서운 세상에 서로 100%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전하고, 변함없을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델리는 쿼카와 따로 살게 되면 미혼으로 평생 혼자 살 생각이다. 사실 우린 따로 살 생각이 아예 없다! 호호할머니 쿼카델리가 된 이후에는 어떤 시니어둥지에 들어갈까 벌써부터 계획하는 녀석들이다. 사람의 인생에 이런 행운이나 운명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서른 조금 넘은 아델리는 이제 안다. 쿼카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게 맞추고 조율하고, 쿼카를 알아가고 짐을 합치고 인생을 나눴던 걸 생각하면.. 이 짓을 다른 누군가와 또 한다는 것은 재혼한 사람만 알 수 있으리. 맞춰온 발자취만큼 앞으로 만들어갈 발자국도 행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혼자보다 기꺼운 둘로 인생의 행복을 두배로 즐기며 살아간다.
앞으로도 아델리는 동반자인 쿼카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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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독서관 뉴스레터로 쿼카델리하우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브런치스토리에서 뵙겠습니다. 조립식 가족들 화이팅! 언제나 행복하세요!
- 쿼카델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