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바다야 엄마 사무실이야

by 육아하는노무사


7평의 공간이지만 내 책상도, 상담 책상도, 나름의 명패도, 그리고 작은 간판도 달았다.

작은 사무실이라 들어갈 돈이 얼마 없을 줄 알았는데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보니 생각보다는 꽤 들었다.

얼마 전 받은 퇴직금으로 사무실 보증금을 내고 근처 사는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이 막걸리를 사 들고 오셔서 남편과 아이와 5명이서 조촐하게 개업식도 했다.


'아이의 하루에 내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내 일은 놓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벌린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무실 계약서에 인감도장을 찍고 가구를 사들이고, 간판을 달고, 개업식이랍시고 막걸리를 받고 있으니 지금 상황이 눈에 들어오면서 명치 윗 부근 가슴속 어딘가가 묵직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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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개업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자격증으로 회사에 들어갈 수도, 법인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결국 자격증의 꽃은 개업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어도 그랬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살아온 나는 월급을 받고 사는 삶이 좋았고 편하다 생각했다.

돈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음 싶었다. 불안한 상황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 자격증을 선택한 것도 요즘은 어딜 들어가도 정년채우긴 어렵다 하고, 고용안정을 보고 공무원을 택하자니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얻는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정적이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박봉이고 싶지도 않았다. 큰돈은 벌지 못해도 이 정도면 내 또래보다 괜찮은 수준이다 정도면 됐었다.

돈돈 하면서 살지 않는 정도, 매년 몇 번씩 해외여행은 못 가도 어쩌다 한 번씩은 갈 수 있는 정도,

아이가 수학학원을 보내달라고 내게 눈치보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형편.

그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일을 내가 하고싶을때까지 하면서도, 어느 정도 스스로 만족할만한 아웃풋은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이 직업을 선택한것이지 자영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런 나의 계획에 정반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택을 아이가 하게 했다.


아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아이 옆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을 것,

그리고 나도 내 일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으려면 결국 이건가 생각하면서 막걸리를 받아 마시고 괜히 가구들을 향해 절도해보고, 괜히 애한테 “바다야 엄마 사무실 어때?” 물어도 본다.


'돈은 못 벌어도 회사보단 아이한텐 낫겠지'

'해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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