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권태기

성실함은 미련 맞은 거고 나태함은 지혜로운 거 같다

by sunkshin

목디스크로 몸고생 맘고생 하던 끝에 애들만 두고 혼자 한국으로 가 갑자기 전신마취 수술했다. 아픔의 시간이 예상치 못한 대장정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내 삶은 과도기에 있다.


지난날 새벽운동을 적극 추천하고 헬스장 거울에 비친 내 복근을 보며 뿌듯한 눈바디를 했던 자신감 뿜뿜 하던 나였지만

집 카펫 위에서 느릿느릿 이리저리 몸을 휘젓는 목에 칼자국이 난 불안한 홈트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저녁 육아시간엔 인스타에 올리고 싶은 예쁘고 건강한 밥상을 차려놓고 늘 그렇듯 버릇없는 아이들의 다툼을 단숨에 제압하고 숙제시간 공부시간을 아이들 사이사이 앞뒤로 감시하며 영어면 영어 사회면 사회 모든 과목을 전두지휘하던 장군 같은 내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한 숟갈 덜 먹든지 말든지 적은 듯한 밥양에 한 그릇 음식으로 내가 치우기 편한 대로 요리하고 차려주고

다툼이 시작되면 체념한 듯 밥숟가락을 내려놓거나 혼자 못 들은 척 꾸역꾸역 밥을 삼키고

숙제타임 공부시간에 엄마를 불러대며 징징대면 나는 모른다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난 나의 성실함은 내 몸을 살피지 않았던 나의 미련함으로 느껴진다. 꼼수 좀 부리고 게으름 좀 피울걸..

몸 안에 인공관절이라는 불안한 장치와 결국 함께 해야 하는 나의 남은 인생에 감사함도 있지만 후회도 된다.


육아 권태기.. 내가 갑작스러운 수술하고 비운 2주간

돌아오면 아이들이 나를 반겨주고 나의 빈자리를 그리워했들 거라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을 방치했던 그 기간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현실을 전혀 아니다.


여전히 내 옷은 왜 안 빨아놨어? 엄만 시간도 많은데 왜 내 잠옷을 안 사놨어? 내 구두가 이것도 안 맞는다니까 안신을 거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기숙사로 다 보내버릴까.. 시험기간에 몰래몰래 쇼츠하느라 거짓말을 하고 진작 깨워서 아침밥 미리 다 차려줬건만 스쿨버스 늦을 새라 뛰어가는 한심한 모습을 보니 답답하다.

어차피 내가 챙겨줘도 저 모양인데 그냥 놔둘걸 하는 분노도 생긴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은 희미해진 지 오래다.. 사춘기 아이들 두 명에 대한 육아 권태감 나만의 에너지와 돌파구를 찾아야 할 듯한데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일을 하기엔 아직 몸이 회복기인 거 같아 불안하다.


아침전쟁을 치르고 난 육아권태기

애들에 대한 분노가 혼자 있으니 차분해지며 헛웃음이 난다. 오늘도 적당히 하자, 대충 살자 애써봤자 탈이나 나더라. 하하..! 그 에너지로 나를 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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