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은 내가 혼자 만들었다.

마음을 거치지 않은 창작물이 어디 있겠어요 아니 어디 마음만 거쳤겠어요

by 박재

어릴 적부터 내 것에 대한 소유가 강했다. 견출지가 남으면 혼나는 것도 아닌데 남김없이 모든 물건에 내 이름을 써서 붙였다. 필통 디자인을 신경 쓰지 않고 써놓은 내 이름. 그 필통 안에 생선 내장처럼 차곡차곡 채워져 있는 볼펜과 샤프, 점보 지우개와 컴퓨터 사인펜까지 모조리 견출지를 붙였다.


누가 내 필기도구나 체육복, 교과서를 빌려가기라도 하면, 매 교시마다 받을 것을 잊지 않았다.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어떻게 돌려받을지 투닥투닥 상상했다. 가끔이지만 돌려받지 못한 때도 있었고 나는 빈약한 불만을 내심 품을 뿐이었다. 심지어 내 이름표를 뜯어내고 다른 스티커로 그 위치를 가려 제 것처럼 쓰는 애도 봤었다. 내 것 같다는 의심이 들지만 확인도 질문도 하지 못하는 소심함 속에 강탈을 삼켰다.

“너무 민감하네 뭐 그리 대수냐”라는 말도 들으며 내가 문제인가 싶어 마음을 누르며 살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 물건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내 시간을 허락 없이 가져갔다는 게 문제였다. 그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역시 훔쳐간 도둑놈들이 잘못이 맞았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낮에 삼킨 말들은 밤이 되어서야 한 두 마디씩 덩어리 져 토해졌다. 그 한 가지 문장을 내뱉고 쓰기 위해 며칠씩 걸리는 날도 있다. 이 말이 나를 다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말은 나만의 결로 고른 것이니까 어느 정도는 나와 닮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 결을 누가 훔쳐간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이 나의 마음을 닮은 것처럼 어디선가 부드럽게 말해진다. 나는 그 문장을 들으며 서운하다, 보다 먼저 속이 헛헛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내가 쓴 것 같은 문장. 하지만 내가 쓰지 않은 문장. 그럴 때면 내 마음이 잠깐, 세상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인데. 비슷한 걸 말해보자면,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내 앞에서 흥얼거리는데, 그 노래 제목도, 가수도 모른 채 “그냥 들어봤어”라고 말할 때의 그 기분. 뭔가가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은 다 비슷하잖아.”
“아이디어는 공짜야.”
“베껴도 잘하면 능력이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안쪽으로 접힌다. 그리고 그게 한 사람의 감정과 시간 위에 올라선 무심한 발걸음처럼 느껴진다. 그게 비겁한 이유는 가져가면서도 가져갔다는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마음을 혼자 만들었다. 읽히지도 않을 거라 생각하며 써왔고, 그냥 적어두는 것으로도 내 안의 울음을 정리하곤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말 위에 자신의 이름을 얹고, 가장 아픈 문장을 잘 썼다고 칭찬받을 때 나는 오래도록 무력해진다.


그건 그냥 글이 아니라, 내가 견디기 위해 써온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사유를 가져가는 일은 그 사람의 외로움을 가져가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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