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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 Aug 18. 2023

불운을 거래하시겠습니까 ?

죽고 싶은 겁쟁이의 여정

들어가며


수영과 피아노, 외국어를 배우자
그리고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남을 돕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온 세상에 나를 잔뜩 남겨놓아야지




 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20대의 삶을 살기로 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내 주위에 나만큼 불운한 20대는 또 없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를 부모님보다 더 예뻐해 주신 둘째 삼촌의 별세 소식과 한 아주머니의 학대로 내 특식은 놀이터 모래에 6살에 원형 탈모를 앓았고

학창 시절, 끊임없던 크고 작은 학교 폭력들과 집 안의 반대로 포기한 학업

2020년 1월,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 앞에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

2021년 11월, 새로이 시작한 우크라이나발 물품 수입과 새로이 시작된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

최근 뭐가 그리 급하신지 하루아침에 볼 수 없게 된 아빠까지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에 맡겨져 자라온 나는 차별이 당연했고 생존을 배워야 했다.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이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자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어쩐 일인지 엄마가 친구라는 사람과 함께 차로 학교를 데려다주던 날 꽤 길었던 침묵을 깨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난 당신이 싫다는 불쾌감을 가득 담아 “저한테 잘 보이려 애쓰지 마세요.”라고 말한 뒤 있는 힘껏 문을 닫았다. 이미 한 번 상처만 남은 재혼을 봤기에 만류했거늘 결국 나와 다른 성씨의 동생이 태어났다. 얼마 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를 불러 내 이름이 바뀌어 있다며 무슨 일이냐 물으셨고 하루아침에 나라는 사람은 7년 뒤 초등학교에 입학할 저 아이를 위해 사라졌다.


“그래도 네 동생인데 나중에 학교 가서 가족이랑 성이 다르다며 손가락질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


 동생이라 불리는 침대에 가만 누워있는 자기 이름도 알아듣지 못하는 저 아이의 7년 뒤를 위해 매일 불리는 나의 이름은 존중받지 못한 채 바뀌었고 어린 마음에 ‘나의 힘듦은 약점이 되어 돌아오기에 속 이야기를 터놓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입시 준비가 한창일 때 일을 병행하던 나는 하루가 멀다고 조롱 섞인 희롱을 내뱉는 몽매한 상사 덕에 지쳐있었고 집 안의 반대로 희망하던 학과 또한 포기하게 되며 힘듦을 버텨온 유일한 이유인 꿈마저 사라졌다. 차마 꺼내지 못한 불운한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 이걸 읽는 여러분에게 저는 안타깝고 측은한 동정의 대상인가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라는 책을 읽으며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길 바랍니다.




제1장


제 불운을 기부합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프랜차이즈 족발집, 무한리필 장어집, 줄 서서 먹는 오리 맛집과 고깃집, 단독 주택을 리모델링한 고급 레스토랑 등 여러 종류의 음식점은 물론 편의점, 피시방, 당구장, 옷 가게까지 그 당시 할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 했다.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냐고? 아르바이트는 내 취미였다. 물론 소위 금수저라 말하는 풍요로운 집안은 아니고 원할 때 원하는 정도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기에 끊임없이 아르바이트 했고 최선을 다했다.



“다마스야 한 3~6개월 동안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할래? 아님 네 친구 중에 할 사람 있어?”


 그렇게 나는 최저 시급이 4,580원이던 때 동네에 있는 작은 개인 편의점에서 평일 3~4일 정도 21시부터 07시까지 하루 10시간, 3만 원이라는 일급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지역 내에서도 학생이 편의점, 그것도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던 곳은 그 작은 개인 편의점 하나만이 유일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평일 야간 아르바이트는 학생만 쓰셨던 사장님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보고 싶던 중학생이었기에 가능했지, 싶다. 비록 나는 약속된 기간을 채운 뒤 그만두었고 그 매장은 문을 닫았지만, 등교를 위해 마감 후 곧장 3~5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을 향해 뛰어가던 피곤했던 그때, 최소 5년 이후에나 가능한 경험을 해봤음에 감사했다.


 그다음 해엔 하교 후 여러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되었는데 주말같이 바쁠 때는 두 명이, 비교적 한가한 평일은 한 명이 일을 나가되 주로 일을 잘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나가는 편이었다. 나는 일 잘하고 싹싹한 아르바이트생은 이미 많으니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자고 다짐했고 손님들의 특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내가 살던 동네에는 지역 소주가 있었는데 어느 날 40대로 정도로 보이던 한 손님께서 그 지역 소주를 콕 집어 주문하셨고 한 3주쯤 지났을까? 재차 방문하셨기에 주문받은 뒤 먼저 지역 소주를 들고 가 ‘저번에 오셨을 때 이것만 드시던 게 기억이 났다’며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기억하냐?”며 이내 씩 웃으시곤 지갑을 꺼내셨다. 그 이후 몇 번 더 손님들로부터 칭찬받았고 그렇게 나는 평일 고정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서너 달쯤 지났을까? 어느새 나를 찾는 단골은 물론이고 빼빼로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주시는 손님들 또한 생겨났으며 평일에도 종종 대기 줄이 생길 만큼 손님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를 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쯤 2호점 창업을 계획하고 계신 사장님께서 새 매장의 매니저를 맡아줄 수 있냐, 부탁하셨다. 이게 내가 16살일 때의 일이다. 그러나 매니저가 되어 전반적인 매장 경영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나는 불미스러운 일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고 우연인지 매장은 손님이 점차 줄어들며 문을 닫았다.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손님이 많진 않았지만, 두 개의 층을 사용하는 단독 주택 건물이기에 아르바이트생을 필요로 하셨던 걸로 보인다. 사장님은 항상 쉬는 시간이면 악기를 다루셨으며 아르바이트생인 내 밥도 항상 손수 만들어 주시던 대학 교수란 본업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한 번은 고르곤졸라 피자를 만들어주셨는데 어찌나 버섯과 치즈 향이 깊던지 나는 그곳에서 고르곤졸라 피자를 맛본 이후 그 어디에서도 그 맛을 뛰어넘긴커녕 엇비슷하단 느낌조차 받아본 적 없다. 덕분에 그곳이 아닌 곳에선 고르곤졸라 피자를 먹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직 매장을 운영 중이신 것으로 보인다.


 입시 준비를 할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옷 가게 사장님이  2호점을 내셨다기에 얼굴을 뵐 겸 매장 구경도 할 겸 들렀고 사장님을 기다리려 잠시 소파에 앉았다가 몰려드는 인파에 고군분투하는 직원을 도와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곤 그날 나는 그 매장의 새로운 직원이 되었다. 카운터 한편엔 내 단골 리스트가 적힌 메모가 있었고 신상을 알리는 가볍게 올린 게시글에도 곧장 사러 와주는 감사한 분들이 늘어갔다. 가까워질수록 상사의 선 넘는 조롱과 희롱에 지쳐갔지만, 이 매장에 필요한 사람이라 판단되어 사장님께 털어놓지 않았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매출이 줄어든 매장은 다른 사장님께 넘겨졌고 상사는 매장 근처에 자신의 매장을 차렸으나 얼마 안 가 문을 닫았다.



 ‘다마스 님으로부터 불운이 입금되었습니다.’

 ‘다마스 님에게 불운이 출금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내 초능력이 하나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내 불운을 나눠주기도, 그들의 불운을 가져가기도 한다는 것. 물론 농담이지만 믿기 나름 아니겠나? 많은 손님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정신없는 아르바이트를 즐겼던 것과는 달리 여유로움을 지향하는 나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 많다 싶으면 도로 나오는 편이다. 소위 일이 끊임없고 많다는 의미의 ‘일 복이 많다’는 말을 늘 들어왔지만 나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한데 생각해 보면 지금도 아무도 없던 카페에 들어갔다가 느닷없이 배달 주문이나 홀 손님이 밀려 들어온다거나 옷 구경을 하려다 갑자기 사람이 몰렸던 경험이 심심찮다. 의아한 표정으로 갑자기 사람이 많아져 불편하고 나가고 싶어 했던 처음과는 달리 점차 일복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건지 궁금했고 지금은 ‘아무렴 어때‘ 그들의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기분 좋게 가게에서 나온다. 아마 나는 커피 한 잔뿐 아니라 그들의 걱정이나 고민이 담긴 불운도 함께 구매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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