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지 않을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 밝은 밤, 최은영 -
의료인에게 절대 금기어
"오늘은 조용하네~ 환자가 없어"
정말 내내 바쁘다가 '오늘 좀 여유로운데?' 잠시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내 마음을 들은 것인지 꼭 다음날엔 바쁜 일들이 생긴다. 왜 이런 응급상황은 연달아 터지는 것인지.
출근하자마자 학생 하나가 어지럽다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보건실에 방문했다.
혈압을 재는데 갑자기 학생 수축기 혈압이 70까지 떨어지는게 아닌가
"ㅇㅇ아~ 선생님 소리 들려? 여기 어디야?"
물어봐도 의식도 흐려지는지 대답도 못하기에 갑자기 등골에서 땀이 흐르는 경험을 했다.
병원에 가야한다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드렸지만 바쁘시다며 협조가 안되는 보호자들..
'아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아이가 아프다는데...'
울화통이 터졌지만 지체되면 안되겠다 싶었다. "교사가 후송하다가 혈압이 더 떨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안전한 환경에서 이송하는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답답한 나머지 통보하듯 말씀드리고 바로 119를 부르기로 하였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며 응급후송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또 다른 학생이 보건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제 극심한 두통 때문에 응급실에 다녀왔으며, 지금도 그때처럼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찾아왔다. '오! 마이 갓!' 학생의 이런 과거력이 있다면 진통제 주고 좀 지켜보자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닐텐데... 이것저것 건강사정을 하며,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싶은데...
지금 나는 너무나도 정신이 없단 말이다!
내 몸이 두개였으면 좋겠는, 정말이지 그런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요새 의료파업 때문에 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을 정하는게 너무 어려워졌다.
소방관이 왔음에도 병원에서는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을 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학부모님은 어디병원으로 가야하냐고 하시고 병원은 거부하고.
난리통이 따로없다. 정말.
그렇게 지체되기를 30분. 결국 보건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무실에 전화드려 임장지도를 부탁드렸다.
여차여차 학생을 후송하고 후다닥 수업에 들어갔다. 응급환자를 기록하니 오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제 좀 숨을 돌리나 싶은 오후였다.
백일해 환자가 터졌다고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았다. 백일해 환자 밀접접촉자 명단 파악해서 보건소로 보내고 가정통신문 배부해달라는 연락이었다. 보건소에서는 "확진자가 한명 더 생기면 전수조사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통보를 들었다. 제발~~ 제발~~ 오늘 하루 무탈하게 지나가줘~~ 부탁이야...
하늘에 대고 '하나님 오늘 하루가 참 기네요..저에게 왜 이런시련을 주시는건가요?' 외치고 싶었다.
아이들은 내가 바쁜것과 전혀 상관없이 아프다.
"샘~ 여기 아파요", "샘~ 농구하다 삐었어요" 상병처치를 해주다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오늘은 2학년 학생들이 숙박형 수학여행 감염병 예방을 위해 코로나 자가진단키트 배부 해야하는 날이다.
'지치지말자!' 다짐하며 다시금 보건실 공장 가동해보았다. 10학급, 총 300명 정도의 키트를 하나하나 분배하여 학년부로 배송까지 다녀오니 벌써 퇴근시간이었다.
'아직 행정업무는 남았는데.. 초과근무..? 에라이 모르겠다 내일의 내가 하겠지 뭐...'
오늘은 너무 힘들었다는 이유로 게으른 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늘 퇴근하고 진짜 맛있는거 사먹을거다. 말리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