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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 Fontes Nov 04. 2015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의 유형을 두가지로 나누었는데, 행동보다 생각이 많은 햄릿형과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돈키호테형라 했다. 햄릿형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강조하지만 돈키호테형은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다소 엉뚱한 사람을 일컫는다.   


“저 사람은 돈 키호테야”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는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채 저돌적이고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사람, 온전한 정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1605년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재치있는 이달고 라 만차의 돈 키호테')라는 제목의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는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을 보고 "저 자는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돈키호테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스꽝스러운 사람의 대명사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00년 가까이 스페인은 펠리페 2세의 치세로 인해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이런 영광도 오래가지 못하고 1588년에 ‘무적 함대’가 괴멸되자 스페인은 급격하게 기울어 간다. 이러한 조국의 운명과 함께하며 실의에 빠져 있던 50대 중반의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의 왕실 감옥 속에서 스페인과 자신의 영웅 시대를 씁쓸한 미소로 돌아보며 쓰기 시작한 것이 ‘돈키호테‘이다.   


돈키호테를 쓰던 시기는, 중세의 봉건적 가치고 무너지고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시기, 영광의 무적함대가 쓰러져 국운이 저물어가던 시기 그리고 ‘무적 함대’의 식량 징발과 세금 수금원으로 일하면서 교회에서 파문당하기도 하고 투옥의 고생도 경험해야 했던 작가 개인적으로 가장 굴욕적인 시기로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심리를 담아 풍자한 소설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엉뚱한 인물로 평가되어지는 돈키호테, 그는 비록 주변에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정작 돈키호테 자신은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도려내고 학대당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정의의 기사'가 되고자 하는 강한 신념의 사나이였다.

   

라만차의 시골 구석에 사는 50세 남짓의 알론소 카하노는 기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정신이 이상해진다. ‘나는 정의의 기사야 불의와 맞서 싸우겠어“ 


그리고 그런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낡아 빠진 갑옷과 투구를 몸에 두르고 스스로를 기사 돈 키호테라 부르며, 시골 처녀를 둘치네아 공주라 생각하고, 근처에 사는 농부 산초와 앙상한 말 로시난테를 타고 길을 떠난다.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그를 비웃지만 그는 100년전 기사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에게 숙소 여관은 성이었고, 풍차는 거인으로 싸움의 대상이었다. 양떼를 적군으로 여겨 돌진했다가 목동에게 되려 뭇매를 맞아야 했고, 포도주를 넣은 가죽부대가 적군으로 쏟아지는 포도주는 적들의 피라 착각했고, 죄수들을 폭정의 희생자로 보면서 구해주려다 얻어맞는 등 사사건건 ‘악’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는 정의를 위한다는 착각으로 수많은 모험에 도전했지만 매번 실패와 좌절로 끝나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마을 친구인 성직자와 이발사들의 책략으로 감옥에 갇히자 자신이 마법에 걸렸다고 믿으면서 마을로 끌려 돌아온다.


‘후편’의 편력에서는 돈 키호테와 그의 시종에 대한 공작 부부의 우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산초 판사가 바라타리아 섬의 영주로 취임하고 ‘사자의 모험’과 ‘몬테시노스 동굴의 모험’, ‘마법선(魔法船)의 모험’ 등과 같은 모험을 지속한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은빛 달의 기사’와의 결투의 패배로 기사로서의 편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병상에 누운 채 환상에서 깨어나 알론소 키하노로 죽는다.


이 소설은 과거의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기사의 모습을 우스꽝스러운 기사 돈키호테와 대비시킴으로서,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영국과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사치와 향락에 빠져 저물어가는 스페인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는 귀족들을 비유로 질타한 풍자소설이다.    


꿈꾸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자와 꿈을 꾸며 행동하는 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과거의 추억만을 헤아리고 있는 것 보다는 무모하더라도 남이가지 않는 길을 가는 엉뚱한 돈키호테가 더 낫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꿈을 꿔야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일단 꿈을 꾸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인가...

꿈이 없이 과거의 영화와 현실의 안주에 만족하는 것이 절대 악이라 하고 꿈을 꾸며 행동하는 돈키호테를 절대 선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고 하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다가 너무 빠른 속도로 넘어지고 반대로 속도가 늦어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이라면 언젠가는 가려했던 것을 지나갈 것이니 속도로 인한 문제만큼은 겪지 않으리라 하는 의미일 것이다.   


꿈꾸고 행하는 돈키호테가 본받을 만하다 할 것은 방향의 올바름에 있다. 다소 엉뚱하여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그의 방향은 정의였다. 그리고 그것을 향한 저돌적인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를 절대 선이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방향은 나만의 방향이어서는 아니되며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보고 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 할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만이 옳고, 나만이 정의이며, 나만이 예외일 수 있다는 독선의 시대. 나는 물론 나와 관련된 주변에서 벌어지는 행위는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그것이 돈키호테의 문제였다. 더 심각한 것은 돈키호테 스스로가 돈키호테라고 인식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만의 소비자와 수백만의 직원으로 성장한 회사가 자신들의 소유물인냥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기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형제의 난이 그러하고, 고고하고 도도한 척하며 절대 아니라 우겼지만 결국 자신의 혼외 자식임이 밝혀진 뻔뻔함이 그러하고, 마약먹은 사위가 내 자식인가 아닌가 내 딸만 깨끗하면 웃을 수 있는 정치인의 넌센스가 그러하고, 국민이라 말하기를 입버릇하면서도 국민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자신의 사고의 틀에 갇혀 있는 또다른 정치인이 그러하고, 코미디언과 법정 싸움을 벌여 유명해지더니 불륜인지 아닌지 코미디언처럼 행동하는 법조인인지 방송인인지 구별이 어려운 그 사람이 그러하고, 세금을 잘내면 바보라도 되는 듯 탈세에 머리를 쓰면서도 복지와 세무정책을 탓하는 잘나가는 사업자들이 그러하고,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고 특허까지 가로채가는 어느 학자의 양심이 그러하고, 그리고 지금의 이시대도 언젠가는 역사가들의 사관으로 조명되고 기술되어져 그 시대의 역사인식으로 평가되어질텐데 자기들의 판단만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아전인수가 그러하고....     


돈키호테가 돈키호테라 인식하지 못하는 이시대가 돈키호테 소설의 풍자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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