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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Apr 28. 2023

가족은 왜 서로를 아프게 하는가

갈등가족 시즌 2

그토록 바라던 마음의 온전한 평화는 늘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도망가버리곤 했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동생으로 살던 시절 우리 집엔 '갈등'이란 녀석이 식구처럼 살고 있었다. 엄마는 늘 아빠와 싸우거나 언니와 싸웠다. 그것도 치열하게... 치열한 싸움이 끝나면 불편하게 헤집어진 공기 속에 등 떠밀리는 건 꼭 힘없는 막내딸인 나였다. 그럴 땐 꼭 자기 신랑, 자기 딸을 '니네 아빠', '니네 언니'라고 불렀다. 마치 나도 그 미움의 대상에 함께 싸잡아 묶여있다는 듯이. 그저 내 눈에는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모두 다 나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난 착한 아이가 되어 얌전히 있어야 했다. 가족 모두가 나에게 그러길 바란다고 생각했고, 나 또한 그 싸움에 휘말려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해. 경제적인 독립 없이는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없어'


 한 달에 백만 원 남짓의 월급을 겨우 받는 조그만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는 죽도록 일했다. 토가 나오도록 일하고 또 일 했다. 다행히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또래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20대에 팀장이 되고 실장이 되고 명품백을 메고 BMW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면 난 여전히 누군가의 막내딸이었고 동생일 뿐이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은 여전히 비난 섞인 고함이 오갔다. 매일 밤 이 집. 이 집에 들어와야만 한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집 안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내일 뿐이었으니까.


 '서른 살이 지나면 결혼을 해야겠다. 그리고는 훨씬 더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어야지. 그러면 지긋지긋한 지금의 가족은 해체되고 내가 만든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러려면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해. 술 먹고 노는 것을 지나치게 즐겨 해야 할 일을 종종 내려놓곤 하는 무책임한 남자는 절대 안 돼. 불 같이 욱하는 성격을 가진 거친 사람은 질색이야. 예기치 못한 큰 문제가 생겨도 차분히 이성적으로 조근조근 대화할 수 있는 상대여야 해. 무슨 일을 하든 부지런하고 야무지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문제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회피하지 않고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용기와 적극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세상 풍파에도 힘을 합쳐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그 시절의 난 철저하게 계획했고 계획대로 실행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완벽했다.


그렇게 결혼을 통해 난 태생적 갈등 가족에게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 해방감은 얼마 가지 못 했다.

이럴 수가.

갈등가족 시즌 1이 끝나고 갈등가족 시즌 2가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과거의 가족에서 난 방관자로 머물러도 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 갈등의 중심에 선 핵심 인물이 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당황하고 어리둥절해진 난 곰곰이 따져보았다.

하지만 과거의 내 판단을 돌아보는 건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 생각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선명해지고 과거의 내 선택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사람은 과거에 살면 우울하고, 미래를 살면 불안하다고 했던가.

난 우울함과 동시에 불안해졌다.


그렇게 내 마음의 온전한 평화는 좇으면 좇을수록 한 걸음씩 멀어져 갔다.

 

어쩌면 지구 역사 상 모든 가족들이 모두 그래왔던 건 아닐까.

'갈등'이란 이 녀석이 제 식구처럼 같이 살고 있다는 것. 이 녀석.. 결국은 감싸 안아 잘 다루며 함께 살아야만 했던 걸까.


오늘도 난 나를 누르고 도를 닦으며 행복의 방향을 찾아 헤맨다.

지긋지긋한 갈등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그 무언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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