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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Apr 29. 2023

돌보지 않은 흉터

내면 아이를 바라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의도와 상관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아마도 도적으로 상처를 주고자 했던 보다는 그럴 의도는 없었던 경우가 더 많지 싶다. 어쩌면 더 잔인하게도.. 상처를 줄 생각조차 없었기에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줬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수많은 상처들이 피해자의 마음속에만 깊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처를 마주하는 일은 더욱 쉽지가 않다. 그런 일이 있었음을, 그래서 내가 얼마나 어떻게 상처받았는지를 직접 설명하고 입증해 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은 나에게 상처를 준 이를 마주하고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고 사과를 받아 낼 힘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상처가 흉터가 되었다는 건 상처가 아물었다는 뜻이겠지만, 잘 돌보아진 상처와 방치된 상처는 그 흉터의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또 오히려 작은 상처는 흉터 관리를 세심하게 하면서 큰 상처는 큰 치료에만 집중한 나머지 흉터 치료에는 소홀한 경우도 많다. 너무 큰 두려움을 겪었기에 작은 흉터쯤은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내 마음을 펼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마주하고 해결해 낼 자신이 없어 모른 체 덮어두었던 상처들은 어떤 모양의 흉터를 하고 있을까. 그렇게 방치된 그날의 흉터들은 지금의 내 마음을 성숙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울퉁불퉁 제 멋대로 망가뜨려버렸을까.


 요즘 아이 없는 2030 세대들도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방송을 많이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금쪽이의 사연과 오은영 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 상처를 그냥 덮어두고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육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성인 상담, 부부 문제 상담 프로그램 모두 각자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들여다 봄으로써 어려움의 원인과 실마리를 찾아간다.

 

 어떤 문제 행동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 어떤 아픔을 딛고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이해했다고 해서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수적인 것 같다.


 어릴 때의 나는 사랑받지 못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으나 정서적으로는 늘 외로웠던 것 같다. 엄마는 예민하고 칭찬에 인색했고 작은 일에도 일일이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편이었다. 언니는 자기중심적이고 화를 너무 많이 냈고, 아빠는 무심했으며 대화라곤 술에 취해 들어와 일방적인 횡설수설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난 누군가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지금 와서 보니 아마도 회피형 애착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가 경계선을 넘어 들어올 때 예민함이 극에 오르고, 가깝다는 이유로 무례한 언행을 하는 순간 버튼이 눌린다.


 사실 버튼이 눌린다고 해서 딱히 피 튀기는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경계선이 무너졌구나 생각하며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차라리 조금은 불편한 관계가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요새는 "무례"와 "대화법 혹은 말투"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같은... 가만히 참는 것도,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도 답이 아니기에 아마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좋은 대처법들도 있겠지만 순발력이 부족한 나는 대처법을 떠올리느라 더 머리가 아플 것 같다. 맞고 나서도 한참 후에 '아- 내가 아까 맞았구나'를 깨닫는 선천적 둔감성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정서적으로 외로웠구나.

가족들이 공격적으로 느껴져 무서웠구나.

그래.. 그럴 법도 하지. 힘들었겠다.

그러나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무 겁내지마.'


그저 내면 아이를 토닥이며 괜찮다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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