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그런데,
섭섭함, 한 번씩 씹어먹어버려야 할 감정.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리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는 참 좋은 감정이지만, 때로는 고맙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일들도 많다. 고맙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는 이야기와 그로 인한 오해와 갈등, 사실 정말 괜찮았는데 상대방의 일방적 호의 때문에 불편해졌던 강요된 고마움, 너무나도 고마운 은인이었지만 세월 속에 어느새 서운한 감정이 더 커져버린 사이, 사실은 부탁할 일들을 앞두고 고마운 마음이 들게끔 애쓰는 행위와 그럴까 봐 거절하고 싶은 고마움, 의도는 알겠지만 그 방식이 너무 투박하고 거칠어서 자꾸만 상처로 변해버리는 고마움…
지금까지 살면서 고마운 사람이 세상천지다. 그중 하나 골라 고마운 마음 고이 담아 예쁜 감사의 글을 써도 좋을진대, ‘고마움’ 이 세 글자에 엉겨 붙은 수많은 사연들이 떠올라 어지러웠다.
일 속에 파묻혀 지내던 때가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시간에 일을 했다. 밤새도록 일을 하다 해 뜨는 걸 보기도 부지기수였고, 퇴근도, 주말도, 휴일도 없이 회사에 심겨진 나무처럼 살았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았기에 결혼 준비도 내 손으로 한 게 거의 없었다. 혼수도 식장도 드레스도 여행 예약도 그저 누군가가 알려주는 대로 그런가 보다 하며 후다닥 해치웠었다. 아이를 낳고도 2개월 반 만에 복귀를 했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만큼의 몫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릴 땐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직접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연년생으로 아들을 둘이나 낳고, ‘나는 일 해야 하잖아’가 너무나도 당연한 삶을 유지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결국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느라 청춘을 보냈던 우리 엄마는 또다시 연년생 육아의 삶을 한번 더 살게 되셨다. 사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이는 아이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 물론 다양한 케이스로 아이들을 키우는 상황은 모두 다르고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지만, 직접 키우지 못하는 엄마는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제하고 살아내야 한다. 그게 참 익숙지 않아 외면했던 것 같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울음을 그치게 하려 먹던 사탕을 깨물어 한 조각을 물리셔도 어차피 항상 옆에 있을 수 없는 엄마는 할 말이 없다. 매일 같이 한밤 중에 귀가하는 엄마는 저녁밥을 차려줄 수 없기에,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양푼에 때려 넣은 밥과 반찬들을 숟가락 하나로 돌려가며 먹기 일쑤였고, 밤이면 다 같이 불 꺼진 방에 누워 TV와 동영상을 실컷 보다 잠이 들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일곱 살이 다 되도록 스스로 숟가락을 들어 정해진 시간 내 식사를 얌전히 마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고마움과 서운함의 감정이 뒤엉킨 채 세월은 계속 흘렀다. 모두가 애를 쓰고 있지만 모두가 점점 지쳐가기만 했다. 그래도 열심히 이 시기를 살아내면 많은 것이 좋아질 거라 믿었다. 힘들게 임원 승진에 성공하고 회식 후 집에 돌아왔던 어느 겨울이었다. 지치고 싸늘한 표정의 친정 엄마와 남편은 나를 보고 축하한다는 말 대신 ‘고생하더니 잘 됐네’라고 말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을 때 깨달았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애쓰고 있었구나. 맥이 탁 풀렸다.
이제는 아이 때문에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덕분에 가족들 중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달려가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올해 유난히 빨리 피고 지는 벚꽃을 놓치지 않으려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꽃놀이를 다녀왔다. 돗자리와 도시락을 챙겨 들고 모처럼 예쁜 경치를 바라보며 즐거운 한낮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자와 공원 내 운동기구에서 놀아주시던 엄마의 발이 순식간에 접질렸다. ‘우두둑’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고 결국 발등뼈 하나가 사선으로 골절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 한 달간 병원을 모시고 다니고, 필요한 물건을 사다 드리고, 반찬 몇 가지를 해놓고 오고,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수행비서가 되어 보필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무척이나 고마우셨나 보다. 평생 잘 하시지도 않던 말인데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신다. 정말 별 수고롭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말이다.
성인 주먹만 한 활전복 10마리가 배송되어 왔다. 모처럼 전복죽도 너무 맛있게 되었고, 참기름에 찍어 먹는 전복회도 살아있는 전복으로 했더니 오독오독 식감이 기가 막힌다. 버터를 잔뜩 넣어 고소한 풍미가 가득한 버터구이 전복도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고마움 사이마다 켜켜이 끼워졌던 서운함은 맛있게 씹어 먹어버려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