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 있는 쓸데없음에 대하여...
나는 15년 간 광고 기획자로 살았다.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목표가 분명한 프로젝트를 했다. 목표는 수치화되어 달성 여부를 명확히 해야 했고, 그 숫자를 만들어 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실행 계획들이 필요했다. 세워진 계획은 누수 없이 실행되어야 했고 실패했을 땐 반드시 대안이 마련되어야 했다. 해야만 하는 일이 많은 만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걸러내는 것 또한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점차 삶에도 반영되어 갔다. 굳이 도움이 된다 생각되지 않는 만남은 만들지 않았고, 구하고자 하는 답이 명확하지 않은 불필요한 대화는 생략하게 되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말은 불필요하고 귀찮은 일을 낳는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필요하지 않은 일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극렬한 반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러기 시작할 때쯤에 깨달았어야 했다. 심한 번아웃 증후군을 앓기 시작했다는 걸...
예를 들면, 식사를 꼭 챙겨주기 위해서 하는 질문이 아닌 '밥 먹었어?' 같은 질문이라던지, 우리의 삶과 1도 연관이 없는 연예인의 가십에 대한 호들갑 같은 것들이었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대화에 나의 시간이나 감정을 조금도 낭비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아니면,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다. 누워서 대충 말로 때우고 내일로 미루면 하루이틀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하루. 그리고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것들은 정말 쓸데없을까?
굳이 쓸데없는 것들을 찾아 일상의 틈에 하나씩 끼워 넣어본다. 당장 어디에 써먹기 위한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되는 소소한 시시덕거림도 떠들어 본다. 어디 나가 연주회를 할 것도 아니지만, 첼로라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누구도 들어주기 힘든 끽끽 거리는 세상 쓸데없는 소음을 만들어 낸다. 볕 좋은 날 야외에 앉아 책도 보고 글도 쓰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본다. 햇빛을 많이 받아 얼굴은 타겠지만 오늘 밤 잠은 잘 오겠구나- 정도의 생각을 하며...
쓸데없는 것들을 해야 한다.
아웃풋을 걱정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그런 일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일들.
그렇게 쓸데없는 것들을 해야 숨을 쉴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도 쓸데없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느긋한 여유와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