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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May 16. 2023

엄마가 되고 나니 자꾸 엄마가 생각나.

'혼밥'에 대해 글을 쓰다가...

유난히 체구가 작았던 어린 시절 나는 밥을 먹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아이였다. 온 가족이 식사가 끝나고 한참 후까지 밥상 앞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여자가 그렇게 밥을 늦게 먹으면 못 써. 후딱 먹고 먼저 일어나 상 치워야지."


호된 시집살이를 했던 엄마는 할머니의 그런 구식 발언을 적어도 내게는 듣게 하고 싶지 않으셨는지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먹으라 눈짓하며 옆을 지켜주셨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후에도 점심시간 한 시간을 모두 밥 먹는 데 사용했다. 점심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니까 뭐 어떠냐며 친구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혼자 남아 먹는 혼밥에 익숙했던 것 같다. 또는 그건 내게 권리였다.


바쁜 직장생활을 거쳐 아이를 나아 키우다 보니 밥을 후딱 먹어 치워야 하는 일은 많아졌지만 난 여전히 느긋하게 즐기는 식사가 좋다. 그러려면 혼밥이 제격이다. 남은 반찬 처리하며 대충 때우는 주부의 혼밥 말고,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차려진 혼밥.


그런데 사실 주부에게 '그런 혼밥' 기회는 흔치 않다. 만약 오늘도 가족들이 모두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와 혼밥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모처럼 휴업을 하고 쉬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맛집을 찾아 나선다거나 평소에 잘 시키지도 않던 배달음식을 시키지도 않을 것 같다. 가족들의 식탁은 그렇게나 정성스럽게 차리면서 그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는 "간단하게"가 먼저 떠오르다니... 그러고 보니 누군가 나만을 위한 식탁을 차려준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옛날엔 집에 몇 시에 들어가든 엄마가 맛깔스러운 밥상을 뚝딱 차려주셨었지.

화려하진 않아도 정갈하고 입맛을 돋우는 우리 엄마 반찬. 

야근을 하고 들어와 허기지면 쟁반에 한상 깔끔하게 차려 옆에 맥주도 한 캔 놓아주셨었지.


혼밥에 대해 쓰다가 또 엄마가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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