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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ul 19. 2024

다시, 세상으로!

사업을 시작하다

“선생님 저는 제가 너무 무기력한 것 같아요.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


“제가 봤을 땐 OO님은 일상생활을 잘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OO님이 말하는 의욕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있으니까, 기본적인 살림과 양육은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집안도 늘 말끔히 유지하고 있고 식사도 매일 신경 써서 준비하고, 아이들 학습도 꾸준히 시키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힘에 부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시간이 꽤 늘어났는데도 다른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아요.”


“그것만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요~”


“음… 제가 말하는 의욕의 방향은 사실 ‘일’에 대한 의미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일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데 막상 하려고 생각하면 막막하고 엄두가 나지 않아요. 어릴 때처럼 무턱대고 닥치는 대로 해보기에는 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OO님에게 일이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일을 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지 생각해 보세요. 그게 무엇이든 하고 나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질 만한 일을 조금씩 해보며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을 찾아봐야 해요.”




삶은 때로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내게 필요한 것들을 마주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내 손에 잡히지 않던 것들도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15년 간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 있었다. 같은 회사에서 함께 치열하게 일하며 젊은 날을 바쳤고 수많은 변화로 다가 온 위기 앞에서 우리 둘은 함께 고민하며 아파했지만 결국 서로 다른 선택을 했었다. 그녀는 계속 머물기로 했고 나는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약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삶은 다른 갈래로 흘러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자주 만나며 늘 같은 그림의 행복을 꿈꿨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토록 사랑했던 곳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이 썩어 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로 다짐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바로 그 순간에 때맞춰,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나듯, 어느 재력 있는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그의 별명은 ‘돈 버는 기계’

이미 숨만 쉬어도 300억씩 꽂히는 재력가이며 업계 유능한 기업들과 인맥이 뻗어 있는 회장님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요즘 말로 완벽한 T 성향의 회장님은 불도저 같은 거친 기세가 무서우리만큼 강해 보이지만, 불필요한 감정적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세상 깔끔한 비즈니스맨이라고 했다.

‘돈 되는 사업에 촉이 남 다르고 계산이 정확한 사람’

말 그대로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당장 나가면 된다는 주의이다. 돈은 안 벌면서 이리저리 비비고 엉기며 으쌰으쌰 형님 동생하며 이성을 흐리는 인간들에게 신물이 나버린 우리에게 그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회사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게 우리 회사가 아니었을 뿐.

창립 초창기 멤버로 조인한 우리는 어렸지만 당찼고 무식했지만 용감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회사에 경력도 없는 두 처자가 한 팀을 꾸려 소형 중고차 하나를 사서 전국을 쏘다니며 클라이언트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사내 자료나 교육 같은 건 1도 없었던 회사에서 스스로 부딪히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우리는 회사의 중요한 축을 맡으며 회사는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속된 말로 찍새와 딱새. 그녀는 잘 찍어왔고 난 잘 닦았다. 지금 보면 우리는 그냥 친한 깐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로 만난 사이'. 우린 이미 20년 전에 회사를 만들어 키운 경험이 있다.


이번엔 진짜 우리의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지금 우리 두 손엔 아무것도 없지만 머릿속에 같은 미래를 꿈꾸기로 한 순간부터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거림의 이유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이겠지만 꿈꾸고 싶은 것이 다시 생겼다는 건 내게 기적에 가까웠다.


5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냥 하면 된다’라는 식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자기 계발서를 몇 권 읽고, 비즈니스 분야의 전문서적 20권을 목표로 탐독하기 시작했다. 심리적 안정을 도와주는 명상을 위한 시간도 꼭 지켜나가리라 다짐한다.


“엄마 다시 일할 거야~ 그래서 해야 할 공부가 많으니 우리 같이 열심히 하자~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 많이 사줄게~ 물론 그게 언제가 될 진 몰라~ 아마 네가 커서 성공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몰라 ㅎㅎ” 라며 기분 좋은 농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곧바로 서재를 새로 세팅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내 책상만 하나 두었었는데 책상을 하나 더 붙였다. 평소엔 아이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일을 할 땐 동료들과 사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관련 도서의 배치도 새로이 책장을 정리했다.


환경은 행동을 이끌 것이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준비 기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서재를 새로 배치하고 나니 아이들이 내 곁에서 자연스럽게 앉아 공부를 하는 아름답고 기특한 모습이 펼쳐졌다.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은 재택이 가능한 업무들로 이루어져 있어 디지털 노마드를 어느 정도는 실현할 수 있다.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 풀려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아마도 다시 예전만큼 바빠질 테지만 그래도 다시 꿈꿔본다. 다 잘하고 싶어. 육아도, 나의 일도.


대신 70점만큼만.

급하지 않게 천천히, 대신 오래갈 수 있는 건강한 행복을 지켜주리라고 다짐한다. 언제나 든든하고 마음을 편히 쉬이게 해 줄 수 있는 엄마로서 흔들림 없이 굳게 이곳에 있을 거라고.


난 이미 좋은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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