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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ul 15. 2024

오늘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글쓰기의 힘

나는 괜찮아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아주 많이” 괜찮아졌다. 노력의 방법은 다양했다.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고, 정신의학과에서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복용하며 주기적인 진료를 받고 있다. 사실 나는 약은 치료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경전달물질의 조절을 통해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내가 괜찮아지고자 하는 것은 단지 ‘기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미래가 두근거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소중함을 잘 지켜내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노력들을 해내기엔 툭하면 한없이 가라앉아 버리거나, 두려움에 숨거나, 작은 불안에도 폭발해 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그게 약이든 상담이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동력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 동력을 가지고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살을 뺐다. 올해 2월 말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해 10kg 이상을 감량했고 현재까지 목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뚱뚱하다고 불행하지도 날씬하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없이 퍼져가는 몸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한 축이었던 건 분명했다. 한창 예뻤을 때의 모습은 꼭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169cm의 키에 54kg 체중으로 돌아왔다. 예쁜 옷을 사 입었고 이중턱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두 예쁘다고 말해준다. 적당한 체중 관리는 확실히 중요한 것 같다.


다독을 한다. 보통 일주일에 5~6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보통은 소설, 그중에서도 추리/판타지 류를 좋아하지만 그건 그저 쌓아 놓고 먹는 간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 위한 자기 계발서나 심리, 철학 관련 책을 읽고, 요즘에는 비즈니스/마케팅 분야의 전문 서적을 학습용으로 읽는다. 쭉 훑어 읽기만 하고 책장을 덮는다면 나에겐 아마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느낌’만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한번 더 반복해서 읽으며 요약 정리하거나 감상평을 적어 나만의 글로 남겨 둔다. 그래도 이 정도 하면 내 것이 되는 부분이 조금씩은 생기겠지. 그러고 나면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녹으며 그 자리에 뿌듯함이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술을 줄였다. 솔직히 끊는 건 너무 힘들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마셨으니 27년 간 지속된 습관이라 고치기가 힘들다. 사실 난 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주당이다. 술을 고래처럼 마시다 보니 한번 술자리가 시작되면 웬만한 남자들도 나가떨어지고 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오면서 인테리어를 할 때에 바(bar)를 만들어 한쪽 벽면을 길게 술 장식장으로 목공을 해 만들었다. 가로 약 3~4m에 높이는 천장까지 가득 메운 장식장에는 수백 개의 양주와 와인, 담금주가 가득히 진열되어 있다. 이 진열장은 우리 집의 시그니처인데 이 환경을 바꾸지 않는 이상 술을 아예 끊는다는 것은 힘들지 싶다. 그래도 이젠 혼자 방에 숨어 먹는 혼술은 하지 않는다. 주 2회 이상은 마시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확실히 다음 날 몸이 가뿐해 하루를 더 잘 보낼 수 있다.


운동이라고 하기엔 보잘것없지만 매일 6천 보 이상의 걸음수를 목표로 공원으로 나간다.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5분 이내로 뛰었다가 한참 걸었다가 다시 뛰었다가를 반복한다. 이제 겨우 한 달 정도 지속하고 있어 루틴으로 자리잡지는 못 했지만 운동에 젬병인 나에겐 놀라운 변화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괜찮게 만든 건 바로 ‘글쓰기’이다.


2023년 5월 ‘사각사각’이라는 글쓰기 모임을 처음 만났다.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등의 비슷한 모임은 여럿 있지만 그 안에서도 같은 결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나는 주로 온라인 모임에 참여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운영자가 보내주는 필사 문장을 읽고 예쁜 노트를 펼쳐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으며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고 나서 운영자가 덧붙인 해석과 하루의 응원을 받으면 아침의 생기가 피어나는 느낌이다. 필사 문장에 이어 '오늘 하면 스스로 행복할 거라 생각되는 3가지' 일에 대해 적는다. 그리고 자기 전 to do list를 체크하고 오늘 하루의 단상을 가볍게 적는다. To do list를 다 해내는 날보다 못하는 날이 더 많지만 괜찮다. 한 페이지에 적힌 내 손글씨만으로도 난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매일 글쓰기'나 '브런치북 만들기', '독서 스터디'와 같은 모임에 참여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주제로 글을 쓰고 나누고 정성껏 듣고 응원한다. 그렇게 글을 나누다 보면 아름다운 에너지가 샘솟는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희망과 소소한 행복이 나를 채운다.


사실 실제 내 곁에 있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이런 내 취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말만 들어도 오글거리고 지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임과 함께 하는 나의 글쓰기 취미는 나에게 치유를 가져다주는 종교활동과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어쨌든 나는 글을 쓰며 행복해진다. 그렇게 기록된 오늘이 쌓인 지도 1년 2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그렇게 매일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나는 나를 차분히 바라보았고, 내가 직면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렇게 나는 정말 많이 괜찮아졌다.


비루한 글이고 읽어 주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난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글 속에는 내가 나의 삶을, 그리고 나의 가족과 나의 일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실제로 실천해 나가는지 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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