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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Jun 28. 2024

우리 가족이 사는 법

양꼬치 & 모노폴리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란 어떤 모습일까. 흔히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 그려지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실상은 집집마다 저마다의 현실을 담고 있겠지.


우리 집은 보통 6~7시경에 이른 저녁 식사를 한다. 전업맘이 된 이후로는 매 끼니마다 따끈한 새 밥을 짓고 다들 좋아하는 고기 요리 하나쯤을 매번 다르게 구성한다. 이 때문에 부담이 되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해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부분이다. 식사를 하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맛있어?”라고 물으면, “응 괜찮네~”라고 무심히 대답하는 남자들 뿐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음식의 맛이나 감사함에 대해서는 당연한 듯 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보다도 어찌나 할 말이 많은지 식사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통에 기본 식사시간이 한 시간이 훌쩍 넘곤 한다. 그래도 이 시간에 이런저런 일상 대화를 많이 나누는데, 어떤 날은 아이들이 친구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반에 누구 아빠는 판사님이래요.”

“우리 학원에 누구 아빠는 카OO 부회장이래요.”

“그러고 보니 네 친구 누구 아빠는 서울대 출신 변호사라더라~”

“제 친구 누구네 아빠는 전 세계를 다니며 엄청 큰 공연을 연출하는 일을 한대요~”


이 동네에 능력 있는 분들이 참 많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너희들 엄마 아빠 직업은 뭔지 아니?”


했더니 딱히 대답을 못한다. 남편과 나는 오래전부터 디지털 광고를 해왔는데, 매번 클라이언트의 업종에 따라 다루는 상품이 달라진다. 어떤 날은 병원을 홍보하고 어떤 날은 보험을 팔고, 어떤 날은 육아용품에 상조, 납골당까지… 수없이 많은 업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헷갈릴 만도 하다. 남편이 주로 상대하는 거래처는 병원인데, 그걸 보고 아이들은 아빠가 그 병원에 근무하는 줄 알기도 했었다. 게다가 남편은 이것저것 부업을 할 때가 많아 아빠 직업의 정체를 아직도 헷갈려한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아 멀뚱멀뚱한 아이들의 표정이 귀여워 “그냥 돈 되는 건 다 해~”라며 웃어넘겼다.


“그래서 친구가 부럽니?” 하고 물었더니 절대 아니란다.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저는 엄마 아빠가 맨날 집에 있어서 좋아요.” 란다.


사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몇 년 간은 일 하느라 바빠 아이들 곁에 거의 있어주지 못하는 부모였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외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이들은 지금을 당연히 여기고 행복해하게 된 것 같다.


처음 아이를 가지고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다가 아이들 곁에 머물기까지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걸어온 길 끝에 현재가 있는 것이었다.


맞아. 내가 꿈꿨던 가족의 일상은 이런 모습이었지. 나의 이상과 현실이 너무나도 달랐던 그때였기에 난 그런 선택을 했었지. 돌이켜봐도 그건 잘 한 선택이었어.


어리석게도 사람은 때로 스스로 했던 선택이라는 사실을 뒤로한 채 현실의 아쉬움과 더 크게 마주하는 것 같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들은 7시면 스스로 일어나 아침도 잘 챙겨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가장 늦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 아빠다. 아이들이 집을 나설 때쯤 느지막이 일어나 머리엔 까치집을 지은 꼴로 현관문 앞에 서서 “잘 다녀와~”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우리 집은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베란다 창문 밖으로 아이들의 등굣길이 훤히 들어온다. 남편과 나는 현관에서 아이들과 인사하고는 곧바로 창문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 길에서 장난을 치거나 한눈을 파는 모습을 보면 창문을 열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손을 꼭 잡고 나란히 학교로 걸어가는 형제의 뒷모습을 보는 이런 마음이 바로 ‘흐뭇함’ 아닐까.


내가 일을 그만둘 때쯤 남편도 일반 직장인에서 개인 사업자로 근무 형태를 바꾸고 집도 사무실 근처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그 덕에 시간 활용이 자유롭고 퇴근도 빨라졌다. 제법 자란 아이들이 각자 할 일들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면 어느새 오후 시간이 훌쩍 지나있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집에는 아빠가 와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항상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듯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아이들의 우렁찬 인사에 “잘 다녀왔니~?”라고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이 또한 내가 꿈꾸는 가족의 모습의 중요한 장면이었다.




딱히 큰소리 나게 싸우지는 않았지만 집안에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가 있다. 분명 서로 못마땅한 부분을 꾹꾹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땐 밥 하기도 귀찮고 그렇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기도 못내 아쉽다. 그럴 땐 이렇게 말한다.


“양꼬치나 먹으러 갈까?”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가는 흔한 장소는 아닌 것 같지만, 꼬치에 고기를 꽂아 빙빙 돌려가며 익어가는 고기를 다 같이 쳐다보고 있자면 약식 캠핑 같기도 하다. 순식간에 꼬치가 쌓이도록 먹어대는 아이들 배를 먼저 불리려고 나와 남편은 볶은 땅콩에 칭따오만 마시며 고기가 익는 족족 아이들에게 집어가라 얘기해 준다. 그렇게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풀어진다.


아이들이 제법 크고 말도 통하고 나니 가족들과 노는 시간이 꽤 재밌다. 성인이 되자마자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밤새도록 놀 때만큼이나라고 하면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언제쯤까지 우리랑 이렇게 놀아줄까 생각하며 어떤 연휴에는 잠도 안 자며 먹고 놀다 네 식구가 모두 심한 몸살을 앓은 적도 있었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때에는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임은 재밌자고 하는 것이고 지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룰에 따라야 한다는 것들이 생각보다 어린아이에게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좋자고 시작했다가 싸우며 파투 나기가 일쑤였는데, 요즘은 꽤 할만하다.


우리 가족은 ‘모노폴리’라는 보드게임을 많이 하는데, 부루마블보다 단순하고 돈 계산을 지폐가 아닌 전자 카드로 계산할 수 있어 게임 진행이 빠르고 부담이 적다. 지금 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백수인데 모노폴리에서는 늘 돈을 긁어모으는 갑부가 된다. 어떻게든 엄마를 이겨보겠다고 몇 번이고 도전하던 막내에게 처음으로 게임이 술술 풀리는 날이 있었다. 아이는 그간의 설움이 풀리는 듯 신이 나서 방방 뜨며 드디어 설욕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나는 파산 직전 에라 모르겠다 하며 가진 돈을 탈탈 털어 하와이에 호텔을 지었고 내가 가진 전 재산은 하와이 호텔 딱 하나였다. 바로 다음 순간 던져진 막내의 주사위는 야속하게도 바로 하와이에 도착했고 막내는 세상 불쌍한 거지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 아이를 달래지도 못한 채 나는 배꼽을 잡고 실성한 듯 웃어댔다.


나는 더 이상 가지 않은 길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지금 현재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그곳으로 주저 없이 걸어 나가기로 했다. 모든 것은 결국 내 발걸음이 스스로 이끈 길 끝에서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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