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록세틴 항우울제 대참사와 약물 조정
화학 실험 실패의 대참사
확실히 우리 말안들인(코드명: ADHD-7세-초2형)과 항우울제는 물과 나트륨만큼이나 상극인 것 같다. 이번 실험체의 이름은 ‘파록세틴'
실험 목적: 말안들인의 감정 조절 회로 안정화
실험 결과: 완전 대폭발 (그리고 엄마 혈압 상승)
하루 투여 후 관찰 결과, 피실험체가 레드불 10캔을 들이킨 캥거루상태가 되어버렸다. 중력을 거부하며 점프하고, 지구인 친구들을 무작정 포획하려는 등 명백한 부작용을 보여 즉시 실험을 중단했다. 그런데 며칠 후 말안들인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져 보여서, 혹시 재충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어 다시 파록세틴을 투여한 게... 세기의 대참사의 시작이었다.
월요일: 지구 학교 초토화 작전
주말 포함 총 4일간 파록세틴을 체내에 축적 후, 말안들인은 지구 학교에서 본격적인 테러리즘을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지구인)의 증언: "교실 입장과 동시에 적대적 에너지 감지. 공격 시도 3회, 신발 투척 무기 사용으로 다수의 지구인 친구들 피해 발생."
하지만 집에서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평소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며 1년에 한 번 치울까 말까 한 서식지를 NASA급 무균실 수준으로 정리정돈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닥 청소부터 물걸레질까지... 가족 전체가 "어? 이거 우리 애 맞아? 혹시 외계인이 바뀐 건 아니야?" 하며 경악했다.
이는 전형적인 조증(mania) 증후군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우울증을 앓던 지구인 지인의 사례에 따르면, 항우울제 오남용으로 조증이 왔을 때 하수구 트랩을 13단계로 분해해서 구석구석 청소했다고 한다. 말안들인의 외계인 뇌에서도 비슷한 화학반응이 일어난 듯하다.
화요일: 최종 보스전 개시
파록세틴 투여 중단 후에도 체내 잔류 화학물질의 영향으로 말안들인의 광전사 모드가 활성화되었다.
사건 일지:
09:00 보드게임 패배 분노 게이지 MAX. 게임 부속품 투척 공격.
09:30 담임선생님 공격 시도. 어깨 부상으로 보건실 이송.
10:00 보건실에서 진료 순서 분쟁. 다른 지구인 아이에게 바이트 어택 시전.
10:30 튜터선생님에게 "물어뜯을 예정이니 밖으로 나오라" 협박.
11:00 교무실 연행 거부 학교 전체를 무대로 추격전개시.
학교 건물 3바퀴 완주 후 교실 은신. 선생님들 비상사태 발령.
정신과 응급 진료실에서
하교 후 즉시 정신과 응급실로 이송. 그런데 말안들인이 진료실에서 자기변호를 시작했다.
말안들인 : ”이번에 받은 항우울제가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깽판을 쳤어요."
어... 맞는 말이긴 한데? 자기 행동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나중에 “판사님, 제가 은행을 털긴 했지만 그건 당시 복용하던 감기약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변론을 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신과 주치의는 "파록세틴은 단기간 복용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전에 다른 항우울제인 폭세틴 투여 시와 너무나 동일한 패턴이었다. 항우울제만 투여하면 헐크로 변신하는 우리 말안들인... 지난주까지만 해도 지구인 친구들에게 "말안들인이 많이 착해졌다"는 평을 받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새로운 실험: 아빌리파이 투여
모든 외계인이 동일한 화학반응을 보이지 않듯, 말안들인은 항우울제에 극도로 민감한 체질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구인 주치의의 새로운 처방전:
- 아빌리파이 2mg (감정 안정제 + 진정 효과)
- 콘서타 27mg (기존 ADHD 치료제)
- 페니드 5mg (보조 약물)
리스페리돈 증량이 더 효과적이겠지만, 부작용을 고려해 비슷한 효능의 아빌리파이를 추가 투여하기로 했다.
수요일: 실험 결과 관찰
새로운 화학조합 투여 후 등교. 사물함 문과의 접촉사고로 순간적 분노를 보였지만, 빠른 진정 효과 확인. 하지만 아직도 파록세틴 투여 이전의 안정적인 상태로는 복귀하지 못했다.
사회성 센터 수업 후, 내가 상담사에게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꼭 지구 학교에 다녀야 하나요?"
말안들인은 여전히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만, 엄마인 나는 이미 한계 상황이다. 매일 학교에서 터지는 사건사고 보고서를 받을 때마다 "아, 오늘은 또 뭘 했을까" 하며 전화벨만 들려도 심장이 덜컥한다.
6개월 전 같은 질문에 선생님은 "학교는 필수"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생님: “지켜보니 오히려 지구 학교 경험이 상처가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정신과 선생님과 상의 후 다시 의견 드릴게요."
지구인 엄마의 한계점 도달
7년간 공격형 ADHD 외계인 육아를 하면서 멘탈 관리에 자신 있었는데, 결국 극한 상황에 몰리니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백기투항했다. "아직 젊다"던 내 몸이 "더 이상은 못 버팁니다" 하며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초음파 결과: 암 추정 결절 발견
그동안 운동과 식단 관리로 또래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술, 담배 등 유해물질과는 담쌓은 내게 유일한 원인은 스트레스뿐이다. 의사 선생님도 "특별한 원인이 없네요. 혹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라고 물으셨는데, "네, 외계인 키우고 있어서요"라고 답하고 싶었다. 다행히 완치율 높은 암이라지만...
최후의 선택: 홈스쿨링 프로젝트
진짜로 이번에도 지구 학교 적응에 실패하면 홈스쿨링으로 전환해야겠다. 홈스쿨링 무새 같지만 이러다 내가 먼저 우주로 떠날 것 같다.
말안들인 말고도 나에게는 순둥한 지구인 아기 둘이 있다. 앞으로 20년은 더 건강해야 한다는 미션이 남아있다. 순둥이들을 보면서 "아, 역시 같은 종족끼리는 키우기 쉽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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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육아는 정말 쉽지 않다. 매일매일이 서바이벌 게임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건, 이 작은 우주인이 언젠가는 지구에 잘 적응해서 멋진 성인 외계인이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길 바라며...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