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외계인 말안들인의 지구 정착기 02

지구인 정신과 의사와의 생화학적 협상

by 공주맨
Mission Report: 리스페리돈 수치 조작 사건


ADHD 행성에서 온 외계인 말안들인(코드명: ADHD-7세-초2형) 지구 적응 상태를 점검하러 정신과에 갔을 때, 과연 지구인 의사에게 리스페리돈 화합물을 독단적으로 감량 투여했다는 기밀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 참 오랫동안 고민했다.


사실 그동안 소아정신과를 4번이나 옮겨 다니며 지구인 의료진들에 대한 신뢰도가 급속도로 하락했나 보다. 바로 이전 우주정거장의 담당 의사가 처방한 6가지 처방약 화학 물질 칵테일을 그대로 따랐더니 효과는 제로에 수렴하면서 부작용만 잔뜩 나타났던 것이 가장 큰 불신의 원인이었다.


나의 말안들인 육아 경험을 다른 ADHD 외계인 육아맘에게 공유했더니, 그 선배맘 또한 이렇게 말했다.


“정신과에서 주는 화학물질들은 엄마의 직감 센서로 조절해야 해. 보통 대학병원 정신과는 한 달 주기로 가게 되는데, 의사 진료시간은 고작 5분이잖아? 의사 처방을 100% 그대로 따르는 엄마는 아마 지구상에 없을 거야. 약 조합은 처방약을 엄마가 투입했다 제거했다 하면서 조절해서 찾는 수밖에 없어."


그녀의 말이 내 행동에 과학적 근거를 더해주었다.


말안들인과 말잘들인의 전투 by말안들인



고백의 시간: 지구인 의사 vs 외계인 엄마


그래도 말안들인의 지구 정착 프로젝트를 위해 지구인 정신과 주치의가 설계한 화학 공식이니, 약물 감량 사실은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음 진료 시간에 리스페리돈 3mg을 풀 도즈로 투여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특히 리스페리돈의 프로락틴 혈중 농도 상승과 여성형 유방증 부작용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말안들인은 엄마 자식이기 이전에 내 환자예요! 유튜브나 구글에 나오는 부작용 정보를 내가 몰라서 그렇게 처방했겠어요? 다 알고 처방한 거예요. 설마 엄마랑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애가 부작용이 생기게 두고 보겠어요?"


아, 지구인 의사도 나름의 자부심과 전문성이 있구나... 반성했다.




리스페리돈 3mg 정량 투여 실험


그 뒤로는 말안들인의 지구 적응을 위해 꾹 참고 2주 동안 리스페리돈 3mg을 취침 전 정량 투여했다. 신기하게도 리스페리돈을 복용하면 정확히 30분 후 자동으로 슬립 모드에 돌입한다. 요양원에서 공격성이 높은 치매 환자들을 진정시킬 때 사용하는 화합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마 조현병 환자들에게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방학 실험 & 개학 참사


마침 말안들인의 지구 학습기관(학교)이 방학을 맞게 되어, 방학 기간 동안 증량된 3mg 리스페리돈을 꾸준히 투여하고 개학을 맞았다. 집에서는 늘 그렇듯 차분하고 순응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개학 후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다. 등교 전 일주일간은 "지구인 친구들에게 친화적으로 행동하라", "지구 교육자들에게 예의를 지켜라" 같은 지구 사회 적응 매뉴얼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 프로그래밍했다.


하지만 말안들인은 등교 이틀 만에 같은 반 지구인 동급생의 두부(머리)를 H2O 저장 용기(물병)로 타격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그것도 방학 전 발생했던 사건에 대한 복수라고 했다. 지구인 교육자(교감선생님)의 교실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출입구를 봉쇄했는데, 그 친구가 출입구를 개방한 것이 말안들인을 분노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말안들인은 방학 전에도 그 친구를 주적으로 설정하고 여러 차례 복수를 기획했었고, 그때마다 지구인교육자(담임선생님)과 나에게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ADHD 외계인의 기억 저장소와 감정 회로는 과거의 데이터도 현재 시점에 생생하게 재생하는 특성이 있어서, 지구인의 관점으로는 너무나 어이없고 당황스럽게도 방학이 지난 지금에도 다시금 복수 미션을 실행한 것이다.


2025년 8월 어린이과힉동아에서 체크해 본 말안들인의 우울지수



화학 공식 재조정 프로토콜


즉시 지구인 정신과 의사에게 해당 사건을 보고했더니, 담당 의사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아직도 분노 지수와 공격성 수치가 너무 높아 보여요. 특히 콘서타를 투여했는데도 좌석에서 정적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잖아요. 아무래도 오전 투여분인 콘서타와 페니드의 농도를 상향 조정해야겠어요. 그리고 여전히 우울 지수가 관측되어서 다시 한번 항우울제를 시도해 볼게요. 혹시 말안들인이 지난번처럼 조증 모드로 전환되어 슈퍼 말안들인으로 진화할 조짐을 보이면 즉시 중단하세요."


지난번 플루옥세틴을 복용하고 조증 폭발 모드 슈퍼 말안들인으로 변신하여 지구 학습기관(학교) 초토화시킬 뻔한 사건 때문에, '항우울제'라는 단어만 들어도 공포가 엄습했다. 또다시 학교 이탈이나 지구인 교육자 대상 폭언·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는 정말 외계침공 액션영화 한 편 찍는 줄 알았다.


처방전을 받고 집에 와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구 뇌과학의 한계와 미래에 대한 고찰


이렇게 또 말안들인에게 정신과 약물만 계속 추가로 투여하고 효과는 미미하면 어떡하지? 왜 지구 뇌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렇게 느린 걸까? MRI 스캔이나 혈액 성분 분석을 통해 뇌 구조나 호르몬 시스템에 구체적인 이상이 확인된다면 모를까, 원인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약물을 투여하니 마치 시각 장애인이 코끼리를 만지듯 부정확한 처방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실험실 쥐에게 하듯 확실하지도 않고 부작용도 무시무시한 정신과 약물을 고작 만 7세 외계인에게 투여하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또 말안들인이 폭주 모드로 전환된다면 그땐 꼭 개인 맞춤형 홈스쿨링 시스템을 가동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말안들인은 놀랍게도 지구 학습기관인 학교를 선호한다고 했지만, 나는 굳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홈스쿨링을 통해 말안들인의 특화 능력들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한 학기가 지나도록 같은 반 지구인 동급생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데, 학교에 고통스럽게 적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4차원에서 작성한 3차원의 말안들인 카툰 by 말안들인


최종 실험 결과 및 현재 상황


새롭게 조정된 화학 공식을 말안들인에게 투여하고 개학 후 일주일간 관찰한 결과, 상태가 상당히 안정적이다. 다만 항우울제는 하루 투여 후 바로 중단했다. 콘서타를 함께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동조절이 안되고 조류처럼 의미 없이 팔을 파닥거리거나 학교에서 지구인 동급생을 무작정 포옹하며 의자에서 엉덩이가 공중 부양하는 등 조증의 전조 증상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항우울제를 제거한 이유는 집에서 학습할 때 집중도가 급격하게 저하되었기 때문이었다. 말안들인 스스로도 "오늘 너무 집중이 안 돼"라고 보고했다.


다만 항우울제를 중단하니 리스페리돈을 투여했음에도 학교에서는 기분 지수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본인 말로도 "기분이 나쁘다"라고 한다.




긴급 추가 보고: 급식실 밥풀 테러 사건


또한 원활한 오전 학교 생활을 위해 페니드 화학물질을 2.5mg에서 5mg으로 증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또다시 지구 영양 공급소(급식실)에서 다른 ADHD 공격형 외계인에게 구강 내 탄수화물 덩어리(밥풀)를 분사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 사건의 원인을 분석해 보니, 방학 전 또 다른 공격형 말안들인이 구강 내 밥풀 미사일로 우리 말안들인을 타겟팅했던 아주 오래된 데이터를 기억 저장소에서 불러와 복수 미션을 실행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역시... ADHD 외계인의 기억 회로는 지구 시간 개념을 초월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ADHD 외계인 육아는 여전히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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