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과 ADHD 외계인을 동시에 키우는 엄마의 지구 생존 보고서
암이라는 불청객
결국 나는 지구 의학센터에서 “갑상선 암 확진”이라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의료관제탑에서 “확실히 암 맞습니다”라는 판정을 내리니, 내 멘탈의 마지막 에너지 실드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혹시 오진일 수도 없나요? 수술 안하고 지켜볼 순 없는건가요?” 나는 마지막까지 의학적 기적을 기대했지만, 담당 닥터는 냉철했다.
“99% 암 맞아요. 환자분, 아직 젊으시잖아요. 젊을수록 암세포는 제트엔진 달린 우주선처럼 증식합니다. 수술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아, 이제 내 몸의 세포마저 내 말을 안 듣는구나.
하늘이 무너진 정도는 아니었지만, 혈압계를 찍으니 149/98이라는 낯선 숫자가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내 생체 시스템이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주변에 있는 다른 암환자들은 모두 울지 않고 담담했기에, 나도 넌물샘을 차단 모드를 가동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자마자 눈물이 소행성 우박처럼 쏟아졌다. “암이라니….” 생존율이 높다 해도, 다시 자라지 않는 장기를 잘라내야 한다는 사실은 내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커즈와일이 말했던 그 “영생의 특이점”을 향해 살아남겠다던 내 원대한 계획은, 순식간에 “아이들 성인 될 때까지만 버티자”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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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안들인, 전혀 긴장 없는 외계 생명체
이 우주적 혼돈 와중에도, 내 옆에 사는 다른 별 출신 생명체, 즉 만 7세 ADHD 공격형 외계인 말안들인은 신나게 자기 생일을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엄마는 나쁜 짓 많이 해서 암 걸린 거야?”
이 한 마디는 내 멘탈의 블랙홀을 두 번 더 터뜨렸다. 전래동화를 너무 많이 들려준 탓일까. “착한 자는 복, 나쁜 자는 벌”이라는 지구 전통 서사에, 나의 암 진단이 그대로 끼워 맞춰진 것이다. 권선징악 패턴에 익숙해진 말안들인이 질병을 도덕적 심판으로 해석하다니!
게다가 내 생물학적 모성(지구인 母)도 한 술 더 떠 말했다.
“네가 내 말 안 듣더니 암에 걸린 거지.”
… 그래놓고는 자기가 내 이름으로 든 보험금은 자기가 잘 관리하겠다며 싱글벙글 떠나버렸다. 우주 전파망원경으로 내 별자리운세를 스캔해 보니, 자식 복도 부모 복도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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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책임론, 너무 가혹하다
암 확진과 말안들인의 지구 학교 탈출 소식을 20년 지기 친구에게 전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래, 잘했어. 사실 8살 아이에게 모두 네 잘못이라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진실로 그러하다. 이제 겨우 만 8세인 말안들인에게, 학교 적응 실패와 교우관계 문제를 모두 “너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가혹하다 못해 잔인하다.
만약 이런 아이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복지는 차곡차곡 제도화되어 있고, 암 진단을 받자마자 나는 산정특례라는 제도를 통해 진료비 95% 감면을 받았다. 하지만 ADHD 외계인들은 여전히 회색지대에서 표류 중이다. 이들은 제도적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은 채, 각자도생의 우주 생존 모드로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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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홈스쿨링 교재 초광속 배송 완료
암 선고 직후에도 일상은 진행형이었다. 미국 통해 주문한 홈스쿨링 교재가 무사히 도착했다. 처음으로 500달러 이상 결제하며 파손 면책 동의서까지 작성했는데, 지구의 우편망은 놀랍게도 빈틈없었다. 50년 전통의 홈스쿨링 명가는 확실히 달랐다.
말안들인과 함께 수업을 시작해 보니 하루가 초광속으로 지나갔다. Writing, Reading은 15분 워프 드라이브 정도였지만 Arithmetic과 Bible은 30분 이상 체류해야 했다. 한국 수학 진도는 이미 세 자릿수 곱셈을 마스터한 상태라, 미국식 0+1 수업과의 격차는 행성 간 거리만큼 벌어졌다. 그러나 미국식 수업의 매력은 “천천히, 기초부터, 차근차근”이라는 점.
특히 왼손과 오른손 구별법—“엄지와 검지를 펴서 L자가 만들어지는 쪽이 Left”—은 종종 방향 감각을 잃는 말안들인의 뇌신경망에 정확히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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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엄마가 위로받은 성경
놀랍게도 내가 가장 마음에 든 과목은 Bible이었다. 나는 우주 물질론자라, 죽으면 한 줌 먼지가 된다고 믿는 쪽이다. 그런데 “John 14: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이 구절은 마치 최신 힐링 밈 같았다. 하나님을 믿고 근심을 떨치라는 뜻이지만 “이거 완전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아닌가요?”
영어 원문으로 들으니 오히려 쿨하고 위트 있는 우주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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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평화
첫날 수업은 뚱헉거리며 정신없이 달렸지만, 5분짜리 Poetry과목을 못 끝낸 것 빼고는 꽤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학교라는 사회적 중력에서 벗어나니, 교우관계 걱정이 사라졌다. 말안들인은 학업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만의 우주를 유영하는 듯 자유로워졌다.
내 마음도 의외로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다. 암 선고로 가슴 한쪽이 무너졌지만, 말안들인의 동생 영유아 지구인들이 변기에 손을 휘젓거나 거실에 똥 스탬프를 찍고 다니는 정도는 이제 그냥 우주정거장에 부딪친 소행성 부스러기 정도로 하찮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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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결론
앞으로도 여유롭게 살 거다. 5박 6일의 암 수술 입원도 나만을 위한 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분간 속세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마스크팩, 괄사, 그동안 못 읽은 책들 챙겨가서 마음 편히 요양해야지.
복세편살, 나씨나길!
이제부터 말안들인과 나는 별빛 가득한 은하계 꽃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