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외계인 말안들인의 홈스쿨링 항로 개척기

자퇴, 학교라는 궤도를 벗어난 말안들인의 모험

by 공주맨


위장술의 달인, 그러나...


말안들인과 학교 가는 시간에 함께 외출하면 종종 다른 지구인들이 “왜 너는 학교 안 갔니?" 하고 묻는다. 헉, 들켰나? 아니다. 사실 학교 밖에서 말안들인은 거의 완벽한 지구인 코스프레를 구사한다. 외계 DNA를 숨기는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랄까.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모성 행성의 전투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는 게 함정이다. 그리고 언제 본성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사실…




미국발 홈스쿨링 프로그램 도입 성공


미국 온라인 홈스쿨링 '아베카(Abeka)' 시작 일주일. 말안들인과 나는 생각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홈스쿨링계에서도 빡빡하고 할 일 많기로 소문난 스파르타식 훈련 코스다.


그런데 뭐, K교육이라는 지구 최강의 혹독한 교육환경에서 생존 훈련을 받은 말안들인과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적응력 하나는 우주 최강!


아베카의 비디오 레슨 가이드북은 마치 우주선 조종 매뉴얼처럼 정밀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의 스케줄이 분 단위로 촘촘히 설계되어 있고, 챙겨야 할 준비물부터 당일 수행해야 할 미션의 좌표까지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이렇게 체계적인 온라인 홈스쿨링 교육 시스템이라니, 역시 자유의 나라 아메리카는 교육법도 다양하게 발달했음을 느낀다.




영어 해독 능력 급상승 중


아베카 홈스쿨링은 아이용 교재와 지도자용 매뉴얼이 함께 제공되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옆에서 서포트하기가 수월했다. 2학년부터 미국의 홈스쿨링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 건 신의 한 수였다. Writing, Reading, Phonics 같은 기초 영어 해독 시스템을 익히는 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안들인은 지구의 언어와 과학 분야에 특기를 보이는 ADHD 타입 외계인이라, 영어로 진행되는 지구 초등 2학년 과정도 즐겁게 뇌세포에 흡수하고 있다.


특히 아베카의 Phonics 수업은 미국식 정통 언어 해독 프로그램으로, 한국계 지구인 엄마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심지어 일반 지구인 아이들도 영어 학습을 위해 종종 수강한다고 하니, 역시 명불허전이라 할 수 있다.




암호 해독 불가에서 판독 가능으로


ADHD 외계인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악필이다. 말안들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글과 숫자 모두 마치 외계 문자를 쓰는 듯하다. 가끔 이 녀석이 쓴 글을 보면 "혹시 모성 행성의 고대 문자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Writing 수업에서 "Slow and steady, that's the way we write."를 주문처럼 외우며 천천히 글쓰기 훈련을 하니 영어와 숫자 필체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역시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의 힘!




지구 종교 시스템 적응 현황


놀랍게도 말안들인은 지구의 가톨릭 종교 시스템에 정식으로 가입한 상태다. 세례까지 받아서 세례명도 있다. 일명 '(말)안드레아'. 신자인 아빠 잠잠맨을 따라 주일마다 성당에 출입하며, 이제는 미사 순서와 성가까지 암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주일학교에서는 또래 지구인들에게 "한판 붙어볼래?"라는 도발적 소통을 시도해서 수녀님들의 긴급 출동을 부르곤 한다.


사실 성당 데뷔 첫날부터 주님과 마리아님이 지켜보는 신성한 공간에서 다른 지구인 아이의 뺨을 가격하는 대형 사고를 터뜨려, 이미 성당 내에서는 "마음 아픈 외계인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상황이다.




할머니의 기적 기원 프로젝트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말안들인의 친할머니는 손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성모당으로 직행한다. 매일 눈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며, 주님께서 이 불쌍한 외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전두엽이 쑥쑥 자라는 생화학적 기적을 보여주시길 염원하고 계신다.


할머니의 믿음이 우주를 넘어 주님께 닿기를...




또다시 약물 조합 업그레이드


3주 만에 방문한 정신과에서 말안들인의 주치의는 또다시 약물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제안했다. 아빌리파이 5mg, 콘서타 27mg, 그리고 리스페리돈을 3mg에서 4mg으로 증량.


나는 리스페리돈의 부작용이 너무 무서운데! 특히 남자인데 생화학적 변화로 인해 여성화 현상(여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정말 걱정스럽다.


그런데 지구인 주치의의 말이 가관이다. "말안들인도 3학년에는 학교에 복귀해야 하잖아요? 이제부터 좀 더 적극적인 치료 프로토콜을 가동해 볼게요."


나는 기겁해서 "학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 공포의 사이렌이 울려요! 그런 위험 지역에는 보내고 싶지 않다구요!“라고 했지만, 지구인 주치의는 단호했다.


"어머니, 제가 소아정신의학을 연구할 때 두 가지 응급상황이 있다고 배웠어요. 하나는 일상생활 불가, 하나는 학교 시스템 부적응. 지금 말안들인은 그 응급상황에 있는 거예요."




전투 모드 vs 평화 모드의 딜레마


하지만 학교에 보내면 말안들인은 전투 모드로 자동 전환되는걸! 법적보호자인 내가 전화벨 소리에도 공포를 느끼는 이 상황이 정상은 아니잖아요?


나는 암 진단 이후 남은 인생 복세편살(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세상 편하게 살자)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의사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학교는 말안들인을 위한 환경이 아닌데 왜 억지로 적응시켜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미국 ADHD 전문가들이 쓴 연구서에도 "홈스쿨링은 훌륭한 대안적 교육 시스템"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학교 안 가면 인생 종료인 줄 아는 분위기다.


가장 친한 친구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도 대한민국 최고 기업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사례를 직접 목격했기에, 나는 학교, 특히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이 필수가 아니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말안들인 진화 리포트


그래도 말안들인은 진화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학원과 성당이라는 두 개의 고위험 지역에서 아무런 전투 상황도 발생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임무를 완수했다. 이건 말안들인 지구 적응 역사상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게다가 3학년 1학기 수학 미션을 조기 완료하고 심화 과정이라는 더 높은 레벨의 도전 과제에 돌입했다. 그리고 "Our America"라는 새로운 지구 문화 탐구 과목으로 미국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제일 첫 페이지에 나온 철학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외형도 사고 시스템도 다르지만, "One nation under God"이라는 하나의 궁극적 가치 아래 공존한다는 개념 말이다.


그리고 4가지 자유 시스템을 배웠다. Freedom of speech(발화의 자유), freedom of press(정보 전파의 자유), freedom of religion(신념 시스템 선택의 자유), freedom of assembly(집단 형성의 자유). 타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동시에 학습하는 이 커리큘럼이야말로, 다민족·다인종이 공존하는 자유의 나라 미국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 말안들인에게 필요한 건 억지로 틀에 끼워 맞추는 교육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환경이었던 거다.




Epilogue: 외계인 양육 매뉴얼, 새로 쓰기


나는 결심했다. 말안들인이 지구인과는 다른 종족임을 인정하고, 이 녀석이 못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잘하는 것에 에너지를 투자하기로.


생각해 보면 말안들인과 같은 모성 행성 출신의 에디슨이라는 전설적인 ADHD 외계인도 홈스쿨링 시스템을 통해 성장했고, 결국 지구에서 특별한 업적을 이루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가?


에디슨처럼, 이 특별한 꼬마 외계인도 홈스쿨링이라는 맞춤형 성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과 특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지구의 표준 규격에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말안들인만의 독특한 주파수로 빛나는 별이 되기를.


그것이 이 ADHD 외계인 양육 전문가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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