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박멸 미션 완료 후 육아전선 재투입기
갑상선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 성공
나, 공주맨. 갑상선에 침투한 테러리스트 세포들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왔다.
5시간에 걸친 대규모 소탕 작전. 다빈치 로봇의 1000배율 정밀 스캐너 아래 단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냈다. 모든 반란군은 엔도백이라는 특수 격리 컨테이너에 밀봉되어 우주 저 멀리 추방당했다. Bye, 다시는 돌아오지 마.
'5박 6일 병원 힐링 여행'이라는 나의 로맨틱한 환상은 입원 첫날 산산조각 났다. 퇴원 즉시 육아전선 재투입 명령이 떨어진 상황. 남은 입원 기간은 마치 우주비행사가 지구 귀환 전 체력 훈련하듯, 죽기 살기로 몸 복구에 올인해야 했다.
지구인들은 갑상선암을 우주감기 걸린 것처럼 가볍게 말한다. "로봇수술? 흉터도 작잖아~" 실제로 당해보시길. 로봇 팔이 관통한 가슴은 소행성 충돌 수준의 고통이었다. 숨 쉴 때마다 오른쪽 대흉근이 분해될 것 같아서 무통 버튼을 연타했다. 그다음엔 무통주사 부작용이라는 2차 공격. 위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역겨움이란.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현대 의학의 위대함으로 1cm 미만 흉터 3개만 남기고 일상 궤도 복귀 완료.
Episode 2. 병실에서 만난 또 다른 외계인
입원 중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 지니"를 봤다. 여주 기가영은 우리 말안들인의 먼 사촌뻘 되는 외계종이었다. ADHD 행성 출신 말안들인과는 약간 다른, 아스퍼거 성운계 출신 사이코패스 성향 생명체.
어린 시절부터 지구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하지만 지구인 할머니의 헌신적 사랑으로 무사히 성인 개체로 진화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정 회로가 작동했다.
우리 말안들인도... 지구인들에게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제 몸 하나 건사하는 독립 생명체로 자라나길.
Episode 3. 약물 조합 실험의 무한루프
입원 며칠 전, 정신과에서 3주치 생체 조절제를 미리 수령했다. 그런데 또 시작이다. 주치의가 메디키넷으로 변경하자고 제안.
아... 진짜 몇 번째야, 진짜.
메디키넷 - 콘서타 - 메디키넷 - 콘서타...
이 무한 루프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건가요? 새 주치의를 만난 지 벌써 반년. 역시나 이번에도 완벽한 약물 조합은 못 찾을 거라는 확신이 밀려왔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나도 이제 처방 가능할 것 같다. 충동성·공격성 제어는 아빌리파이, 리스페리돈, 렉사프로를 돌려막고. 주의집중력 증폭은 메디키넷, 콘서타, 아토목신, 페니드로 실험.
그런데 말이다. 말안들인이 점점 지구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이게 과연 약물과 각종 치료센터 덕분일까? 아니면 그냥 전두엽이라는 생체 컴퓨터가 자연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자가 수리 중인 건 아닐까?
내 돈 주고 뭘 사는지 모르겠다는 의심이 점점 짙어진다.
Episode 4. 말안들인, 임시 보호자로 승격
갑상선 소탕 작전의 후폭풍으로 한 달간 팔 사용 금지령을 받은 나. 그 공백을 메운 건 의외로 말안들인이었다.
새벽 배송 물품 정리부터 시작해서, 두돌배기 지구인 동생들 귀환 시 신발 탈착, 손발 세척, 간식 제공까지. 동생들은 말안들인을 '작은 보호자' 혹은 '보조 교육자' 정도로 인식하며 의지한다.
신기하게도 동생들의 성장 곡선을 관찰하며 말안들인도 함께 진화하는 듯하다. 외동 생명체로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사회성 상호작용 훈련을 강제로 박탈당했던 말안들인. 뒤늦게라도 유아기 상호작용 프로토콜을 학습할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pisode 5. 홈스쿨링, 새로운 행성 정착 완료
홈스쿨링 시스템에 완전히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좋아하는 과목까지 생겼다고 한다. Writing과 Spelling이 최애란다.
필기체를 배우는데, 예술과 미를 추구하는 말안들인 종족의 본능이 발동한 모양이다. 그림처럼 보이는 문자 체계가 심미적 만족도를 크게 높인다고.
학교라는 지구인 집단 교육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하니, 집안의 평화 지수가 급상승했다. 격변하는 시대에 교육과 양육의 정답 같은 건 없다.
앞으로도 느긋하게, 우리만의 속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