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의혹

by 공주맨
신규 의심 진단명 추가

3주 만에 말안들인과 함께 지구인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방문했다. 이 행성의 정신분석 스페셜리스트와 정기 컨택을 시작한 지 벌써 7개월째.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말안들인이 단순 'ADHD 종족'이라는 분류 코드만으로는 100% 해독이 불가능한 미지의 생명체라는 점이다.


매 진료 때마다 새로운 진단명이 추가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진단서가 아니라 ADHD 외계인 도감이 필요한 게 아닐까.




반사회적 인격장애(ft. 소시오패스)


이번 세션에서 지구인 닥터가 내린 새로운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죄책감 수치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말안들인은 엄마인 나를 때린 사건을 보고하면서도 감정 스펙트럼상 '미안함'이나 '양심의 가책' 파장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속된 지구어로 표현하자면 “소시오패스", 정식 학명으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ASPD)“의 미세한 시그널이 포착되었다는 분석이었다.


물론 '때렸다'는 표현은 과장이다. 정확히는 내 팔에 "콩!" 하고 소심한 펀치 한 방을 날린 정도. 사실 그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새로 구매한 스티커를 광속으로 분실하고는 징징대며 "찾아줘!!!" 하던 그 이전 상황이었다.


그렇다해도 소시오패스?


우리 말안들인은 골수 물고기 애호가다. 물고기를 키우는 데 진심이라 담수어 잡지도 구독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학습한다. 때마다 알람 맞춰놓고 시간지켜 밥도주고 베타가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플레어링이라는 지느러미 운동도 시켜준다.


동생들 케어도 귀찮아하는 척하면서 꽤 잘 해낸다. 최근엔 먼저 다가와 "엄마, 사랑해요" 같은 감정 표현 프로토콜도 가동하고, 동생들이 귀엽다며 끊임없이 그들을 뮤즈 삼아 미술 작품을 양산하는 중이다.


이런 녀석이 소시오패스 의혹을 받다니.


사실 말안들인의 감정 공감 센서가 다른 지구인들보다 감도가 낮다는 건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해"도 말하고, 동생들 초상화도 그리는 이 외계인에게서 반사회적 인격의 시그널이 감지된다는 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단이었다.



말안들인의 자화상



Acting-Out 억제 프로토콜 가동 중


작은 선 넘기'가 반복되면 다음엔 더 큰 규모의 파괴 행위로 업그레이드되는 법. 이건 우주 공통 법칙이다.


닥터의 처방은 명확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액팅 아웃(acting-out),즉 물리적 공격 행위가 크건 작건 발현되지 않도록 조절 시스템을 강화하십시오."


아직도 말안들인은 대안교실이나 학원 같은 소규모 지구인 커뮤니티에서 ‘말보다 주먹이 빠른' 생명체다.


- 수영장에서 뒤에 오던 친구가 실수로 발차기

: 즉각 보복 펀치 발동

- 볼링 게임 중 형이 더 높은 점수 획득

: 분노 게이지 MAX 주먹으로 응징


한창 폭주 모드였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많이 안정화된 편이다. 하지만 완전히 폭력성이 제거된 건 아니다. 여전히 베타테스터 버전이다.



3학년 복학 희망 vs 현실의 벽


얼마 전 말안들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3학년 되면... 학교 가고 싶어."


하지만 냉정하게 계산해보면, 지구인 밀도가 훨씬 높은 3학년 교실에서 말안들인이 깽판칠 확률은 99.9%다.


나는 암 진단 이후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모토로 인생 재설계에 들어갔다. 더 이상 학교 현장에서 전개될 카오스를 실시간 관전하고 싶지 않다.


학교를 안 보냈으면 안 보냈지, 말안들인 전담 매니저로 내 에너지와 생명력을 소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폭력단 만들 거야!


내 단호한 답변에 말안들인은 격렬히 반발했다.

"왜 나를 이렇게 믿지 못해? 이러면 폭력단 만들 거야!“


그래서 나는 차가운 우주의 진리를 일깨워줬다.

"네가 폭력단 만들면, 그 조직에서 제일 많이 얻어맞는 쪽은 너야. 넌 태권도도 검도도 모르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폭력단을 창단하려고? 공부나 열심히 해서 똑똑하고 서로 존중할 줄 아는 동료들을 영입해."


냉철한 생존 전략 브리핑이었다.


말안들인이 아빠 잠잠맨을 생각하며 만든 그릇



마이크 타이슨 루트
: 링 위에서만 폭력을 허용하라



문득 마이크 타이슨이 생각났다.

그도 말안들인과 같은 ADHD 종족 출신으로, 지구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명성을 얻은 케이스다.


차라리 복싱 같은 일대일 격투 스포츠를 시켜서 링 위에서만 에너지를 방출하게 할까? 태권도나 주짓수 같은 다대일 종목은 이미 깽판으로 폐업 수순을 밟았는데, 복싱은 다르려나?




슈퍼빌런 vs 히어로: 분기점은 지금


6세 무렵, 유치원 담당 지구인 선생님은 이렇게 예언했다. “이대로 크면 말안들인은 악당 영화에 나오는 슈퍼빌런으로 자랄 겁니다."


나는 정의를 위해서만 힘을 쓰는 히어로로 이 외계 생명체를 잘 키워보고 싶다. 하지만 그 루트는 너무나도 험난하고, 공략법은 아직 개발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8년만에 도착한 우주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