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치료센터 탐사기

by 공주맨
공격성 수치가 안정권에 진입하다


지난번 말안들인과 정신과 - 아니, 외계 생명체 관리 센터에 갔을 때였다. 백의의 닥터가 나를 보며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의 감정 기복 파장이 많이 안정되었네요. 이제 동족 간 집단 사회성치료 훈련을 시작해볼 만합니다.”


짝치료? 그룹치료? 순간 나는 기쁘면서도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마치 우주선 연료통에 절반은 희망, 절반은 걱정이 가득 찬 듯한 기분이었다.




사회성 치료센터의 불친절한 타임라인


문제는 바로 사회성치료 시간대의 블랙홀이었다.


지구의 사회성치료센터라는 곳들은 일반적 어린이 지구인들의 생체리듬과는 상이한, 기묘한 시간 법칙을 따른다. 대부분의 수업이 ‘늦은 오후에서 이른 저녁’이라는 극악의 타임존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말안들인은 지구 교육 시스템(일명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오전 시간이 프리하다. 하지만 이건 마치 화성 시간대에 맞춰 사는 생명체가 금성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랄까. 완전히 쓸모없는 시간적 여유였다.


한국 나이로 5, 6, 7세 - 유치원에 다녔던 유년기 초기 단계 - 그때 참여했던 사회성 수업들도 모두 그랬다. 당시엔 말안들인만 키우는 싱글 외계인 육아였기에 나는 모든 시공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돌배기 지구인 쌍둥이 생명체가 오후 4시에 귀환하는 순간, 내 거동은 중력 10배 행성에 떨어진 것처럼 극도로 제한된다.




운명의 전화 7회 시도, 그리고 실패


그래도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긴 찜찜했다. 진료 후 일주일쯤 지나 병원과 연계된 사회성센터에 통신을 시도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하지만 역시 인연이 아니었던걸까. 무려 시간대를 달리하며 7번이나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마치 교신이 두절된 우주선과 소통을 시도하는 기분이었다.


말안들인이 그린 자화상.




플랜 B: 사설 치료센터 탐사 작전


나는 세 명의 생명체를 데리고 다닌다고 가정했을 때, 내 에너지 레벨과 시간이 허락할 것 같은 반경 1km 이내의 다른 사설 치료 센터에 교신을 시도했다.


근방에서 꽤 유명한 곳이라더라. 원장의 능수능란한 말솜씨와 탁월한 장사수완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센터를 여러 개로 증식시킨 곳이었다.


원장의 자랑이 화려했다. “저희는 무려 30명의 치료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문해력 수업까지 개설했다며 영업까지 했다.




40분 수업 + 10분 부모 상담 = 6만 원


모든 수업은 언어치료, 놀이치료, 사회성치료 등 치료의 종류를 막론하고 6만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문해력수업도 6만원…? ‘문해력 수업을 6만 원 내고 다닐 지구인이 있을까…?’


더 황당한 건, 이곳에 오는 생명체들은 대부분 감정 조절이 안되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려운 케이스들이다. 문해력이 급한 게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이 급한 외계인들이란 말이다. 이건 마치 우주선 엔진이 고장 났는데 창문 닦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여러모로 의구심이 들었지만, 원장이 3만 원짜리 대면 상담을 무료로 해준다기에 일단 탐사를 가보기로 했다. (결국 거짓이어서 돈을 내고 와야했다.)




착륙 실패: 첫인상부터 시작된 위험 신호


상담날, 치료센터에 발을 들이자마자 경고등이 켜졌다.


실내는 넓었지만 복작복작 생명체들로 가득해 엉덩이를 붙일 공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여러 외계 생명체들… 이전에 말안들인을 데리고 센터에 다녔을 때 느꼈던 그 우울한 기분이 다시금 나를 습격했다.갑자기 예기치못한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 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레드 알람: 중학생 자폐 생명체의 등장

특히 내가 절대 이곳은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나보다도 덩치가 큰 중학생 남자 자폐 생명체가 보호자 없이 대기실에서 홀로 배회하고 있었다. 혼자 중얼중얼 무언가 통신하듯 말하다가, 다른 생명체들의 말을 따라 하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서너 살 무렵의 작은 생명체들 뒤를 따라다녔다.


솔직히 위험 감지 시스템이 작동했다.


의도가 없었다 해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 말안들인 한 명을 위해 다른 순수 지구인 쌍둥이 두 명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었다.




최악의 조합:
ADHD + 자폐스펙트럼 = 돈의 블랙홀


원장이 설명한 함께 수업할 생명체 구성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 년 정도 언어지능이 느린 자스성향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내가 이전 사회성 치료를 통해 얻은 우주적 깨달음이 하나 있다.


공격적 ADHD + 반응 더딘 자폐 = 최악의 케미


공격성을 가진 ADHD 생명체가 정상 지구인을 공격하면? 당연히 울거나 화내는 피드백 신호가 온다. 그런데 반응이 더딘 자폐 생명체는? 대체로 반응 없음. 상호작용도 부족해서 40분에 6만 원을 투자하기엔 너무 아까운 에너지 낭비였다.




반전: 집에 이미
완벽한 사회성 훈련장이 있었다


예전 같이 말안들인이 외동 외계인이었을 때는, 그렇게라도 다른 지구인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아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말안들인에게는 이미 왠만한 의사소통이 모두 통하는 두돌 지구인 쌍둥이가 있다. 셋이서 노는 모습을 관찰하면, 매일 충돌하고 화해하고, 같이 데이터를 공유(책 읽기)하고 협업 미션(놀이)을 수행한다.


집에서 그동안 다녔던 어떤 사회성 수업보다 더 고밀도로 사회적 지능을 쌓아가고 있었다. 굳이 일주일에 한 번 유사 사회성수업을 위해 사회성치료센터에 갈 필요를 못 느끼게 된 것이다.




탐사 미션 종료: 실패


말안들인의 지구 학교 입학을 코앞에 두고 동생들이 긴급 탄생하면서, 나는 말안들인의 모든 치료 센터 미션을 일시 중단했었다. 그렇게 1년 만에 엄청난 기대를 안고 재가동한 사회성센터 탐방 프로젝트 였건만, 결국 거대한 실망감만을 남긴 채 이렇게 종료되고 말았다.




다음 우주 일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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