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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cafe Nov 22. 2023

31: 동네 얘들과  또 놀아볼까? 기대감

제목: 컴퓨터가 고장 & 누나 미워 & 무게 등등

<초1adhd일기 2022년 12월 5일_컴퓨터가 고장>

컴퓨터가 고장 난게 말이 안돼지 컴퓨터에 오류가 났다.
받아쓰기 12
내일 받아쓰기 시험 100점 맞을 것이다.
<초1adhd일기 2022년 12월 9일_누나 미워>

이 못된 누나 같은이라고 그냥 누나들한테 말시키지마 누나들한테 말 걸 지마 못 된 놈 저런 혼이 나야  되는군 너희들 또 야 너 맞을래 때리지 말라고 했잖아 또 또 또 이 못 된 놈 같은 이라고 오늘 2층 다목적실 에서 누나들이 때렸다. 1대 때렸다. 주먹으로 못 된 놈 저런 혼이 나야 겠어.
<초1adhd일기 2022년 6월 1일_무게>

우리반 무게
1번  36kg
2번 19.9kg
3번 20kg
4번 25kg
5번 27.3kg
만약 시소를 1번이랑 2번이 탔어
그러면 누가 몸무게가 제일 무거울까
내가 무겁다
이제 다음 수학 시간에는 길이에 대해서 알아볼거다
<초1adhd 일기 2022년 6월 3일_게가 참 이상하다 남의 꺼 만져>

000000가 선배 신발을 만졌다 그래서 형아가 얘가 무슨 짓이야라고 화냈다 그거 사과 해야될 일이다 나는 안그러는데 000000이만 그런다 게가 참 이상하다 형아꺼 막만지니까
선생님 컴퓨터를 막만진다 또 선생님 핸드폰도 만진다
이상하다 선생님 일하시는 건데
000000이가 만지고 그다음에는 111111도 같이 만지고 그런다


늦은 사과를, 그 누나의 엄마로부터 1년 뒤늦게 받았다. 그때는 우리 아이도 잘못했겠거니 하면서 넘어갔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 누나도 관계의 어려움이 있었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남들이야 생각해서 해주는 표현이지만, 글쎄 특별한 아이라는 표현도 싫고, 마음이 아픈 아이라는 표현도 싫다. 이런 친구 저런 친구 우리 아이 같은 친구도 있는 것을... 마을에서 그 누나를 만나면 이름 불러주고 웃어주고 맛난 것 하면 같이 먹자고 또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섞이다 보면 누나의 언 마음도 녹아지고 내 아이의 언 마음도 녹겠지 하면서 말이다.


예쁜 화병이 깨지면 이전처럼 회복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걸 잘 붙이면 이전 보다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믿든지 말든지... 인간관계도 틀어지고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 깨진 화병을 복구하듯이 그 누나한테 잘해주기로 했다.


이솝우화의 <해님과 바람> 중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추위가 아니라 더위였으니까. 호수랑 다투거나 틀어진 아아에게 떡볶이 하나 더 먹이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 다가갈 것이다. 그 아이도, 내 아이도 모두 우리의 아이인 것처럼. 동네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품어주고 싶다.




어릴 때 동네에서 땅따먹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자치기, 고무줄놀이, 소꿉놀이 등 하면서 놀고 그렇게 뛰놀며 자랐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놀이였고 자연에서 놀이 재료를 얻었다.


 화요일마다 동네 잔디공원, 들, 산, 호수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어울려 책모임을 빙자한 놀기 모임이 있다. 엄마도 덩달아 신이 난다. 뭐 특별한 계획은 없고 누가보면 밋밋한 놀이들이다. 컴퓨터 게임은 멈추라. 온라인을 멈추고 오프라인에서 노는 것이다. 대자연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어제는 호숫가에서 돌 던지고, 오늘은 산자락에서 도시락 까먹고, 내일은 들녘에서 뛰놀고 하는 것이다. 근데 모일 때마다 다음에는 뭐하며 놀지 기대된다.


작년 봄부터 처음 이 놀이 모임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동네 엄마들도 서로 서먹하기도 하고 도대체 매주 뭐 하며 놀지 캘린더를 채우면서도 얼떨떨했다. 그런데 1학기의 경험치가 쌓이니 2학기는 모임 성격이 더 이해 가고, 아이들과 그저 함께 사람과 자연과 벗 삼아 놀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디어들도 조금 더 떠오르고 말이다.

오늘은 뒷동산에 올라갔다. 이전에 가보지 못한 길로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었다. 쌀쌀했지만 걷다 보니 열이 난다.  산마루에서 노을을 바라다보며 3분 동안 산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명상의 시간이 있었다. 3분이 어쩜 그리 긴지, 그나저나 우리 아이들 자주 해서 그런지 아직 유치원생들인데도 3분 동안 조용히 묵상을 한다. 오늘 바라다보는 노을은 안개가 섞여 있어서 은 연핑크 빛이 감돌고 그  위에 호숫물이 비춰서 하늘 빛이 두층으로 엮어 더 색다르고 고왔다. 하나님은 최고의 화가요, 예술가이시다.


아이들이 작은 발로 조금 가파른 솔잎 즐비한 좁다란 산길을 내달리는 걸 따라가다가, 문득 어린 시전 뛰놀던 유년의 산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소중한 것인 줄 몰랐다. 이 철모르는 아이들도 후일에야 보물 꺼내듯 소중한 기억들이 뇌의 어디에 신비하게 간직할 것이다. 함께 자연 속에 있는 이 풍경이 왜 이리 자연스러울까?! 그 사이에 뛰는 아이, 우는 아이, 웃는 아이 다 뒤섞여서 세상 재미있는 하루였다.


그런 일상적인 즐거움들 속에 호수가 안 보여서 마음 한편이 쓸쓸하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 호수도 같이 참여하자고 하니 의외로 쉽게 오케이를 한다. 겨울에 몇 번씩 같이 하곤 권했었는데 이제야 다시금 마음에 문을 여는 것일까? 지천에 꽃이 피고 새가 울던 어느 봄날 처음 같이한 놀이시간에 장애인이냐는 소리에 상처를 입은 작은 새, 호수는 마음이 꽁꽁 얼었었다. 아담한 도서관 난롯불의 온기 주변에 삼삼오오 모이는 계절이 오기까지 그 마음의 빗장이 풀리지 않았었다.


이 자연스러운 풍경화에 우리 호수도 같이한다면


겨울의 문턱, 이제 가을학기 동네 도서관 모임이 네  남았다. 다시 호수가 함께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의 노란 풍선이 벌써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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