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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cafe Dec 02. 2023

32: 엘림 원장님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어

제목: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초1adhd읽기 2022년9월24일_내가 하라는 대로 해>

아우 진짜 그냥 하라는 대로 좀 해라! 어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해 가만 있어봐. 니 삶의 주인 공은 니가 하고 랩가사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해.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니 랩 가사는 니가 써라! 참 아주 말안들어. 언제 끝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선생님 마음이다.

선생님 자격증을 따야지.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돼서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나는 선생님이 아직은 될 수 없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엘림 원장님처럼 상담선생님이 되고 싶다.


허리가 아파서 꼼짝없이 앉아서 쉬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래도 핸드폰으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처럼 두 아이를 모두 등교시키고 호숫가를 거닐다가 marigold까지 산책을 왔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사이 500원을 잠시 고민하다가, 6500원 결재를 하고 라떼를 들고 제일 높은 3층에 앉아 통유리 너머 호수뷰를 즐기고 있다. 평일에는 한산하다. 지난주에 시댁에서 김장을 하고 삼촌이 쏜다고 해서 왔을 때는 시끌시끌 사람도 많고 라이브 무대까지 있어서 대화소리가 묻혀 그다지 즐겁지 않았었다. 오늘은 라떼 값이 아까워서라도 점심 전까지 유유자적 즐길 요량이다. 내년에는 노트북을 들고 종종 글 쓰러 와도 좋겠다.


결혼 10주년이 코 앞이다. 남편은 해외여행 가자고 한다. 나는 작은 휴대용 노트북을 선물해 달라고 했다. 신혼 초, 노트북을 살 때 남편은 자기 일에도 쓰려고 큰 노트북을 내 돈-결혼 전에 모아둔 내 돈-으로 사버려서 속상했었다. 온 가족이 쓰는 공용이 되어버렸다.

내 책상이 생기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에는 기필코 나만의 노트북을 살 것이다. 내 이름, 내 공간, 내 것을 찾고 싶다.  이젠 조금 내 멋대로 살고 싶은 마흔 중반이다. 아직 유치/초등 두 아들이 삐약 대지만 그 와중에도 그들이 학교 간 사이, 나를 찾는 일상 속에서 꿈을 꾸듯 여행을 떠날 갈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다. 호수가 심리수업 들어간 사이 센터 부모 대기실에서 호반이는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놀고 있다. 6년 전에는 삼성동에 있었고 옥천에 두 번째 엘림센터가 개원하고 원장님을 따라 옥천센터로 따라왔다. 삼성동 첫 센터가 재개발 지역이라 그 옆으로 옮겼다. 매주 따뜻하게 말 걸어주던 정들었던 선생님들을 못 만나서 서운하지만, 그분들의 평안을 빌고 또 옥천에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인연을 맺어간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4세 초 아직은 쌀쌀하지만 따사로운 기운이 일고 있는 어느 봄날에 처음 찾은 센터였다. 그때는 대전 삼성동 재개발 지역에 있었다. 아파트 같은 라인 5층에 살던 지인이 소개해주었다. 그녀의 아들이 발달지연이었다. 도무지 어느 센터가 좋은지 몰라서 여러 센터를 동시에 등록해서 다니다가, 그녀는 자신과 아이에게 맞는 한 곳을 발견하고 올인하다시피 다니는 센터라고 했다.


그녀의 소개로 처음  센터였는데, 감사하게도 무료로 초기 상담을 해주셨었다. 나와 남편은 애써 울음을 삼키며 상담을 했었다. 원장님이 희망의 메시지를 많이 주셨다. 강점은 살려주고 약점은 보완해 주자고 하면서. 그리고 초등 입학 전까지 여러 센터를 12타임 주일 빼고 매일 2 타임씩 수업을 받았었다. 입학 후에는 센터들을 싹 접고 이곳에 심리상담 수업만 주 1회 다니고 있다. 학폭에 가까운 다사다난한 트러블을 겪는 아이는 부모에게는 말 못 하지만,  엘림 소장님께는 이야기한다. 사춘기를 지나 아들이 거부하기 전까지 이 상담 멘토인 소장님을 만나러 다닐 예정이다.


나는 아이의 치료센터를 다닐 때 꾸준히 한 곳을 다니는 편이다. 스마트 컨슈머는 아니다. 이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미숙하고 초보 선생님도 호수를 가르치는 것을 통해 배워가야 훗날 실력파로 거듭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엘림 소장님(원장님)같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아이의 큰 복이다. 여태껏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아이의 치료 센터 선생님이 사직하거나 우리가 이사하는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한, 계속 몇년을 다녔다. 좋은 선생님들과는  센터를 그만둔 후에도 가끔 연락드리며 소중한 인연의 끈을 이어가려고 하는 편이다.


가끔 지금의 내가, 혹은 내 믿음이 여러 사람의 도움과 기도를 힘입어 여기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도 그런 좋은 인연들을 만들어가고  속에서 감화받고 변화되고 멀게만 느껴지는 후일에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해 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제24회 학회세미나(2016.08.27) > 사진자료실 | 한국기독교심리상담학회

http://kccan.or.kr/bbs/board.php?bo_table=data2&wr_id=131

한국사회적 자본센터, 사회적 협동조합 엘림에 사랑의 물품 전달

http://www.e-fas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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