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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Jul 13. 2023

아들아, 너는 페라리급의 엔진을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브레이크는 수리가 좀 필요해. ADHD 약을 못 먹은 아들의 하루

ADHD는 페라리급의 엔진을 가지고 있지만, 브레이크의 강도는 자전거 급 밖에 안된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엔진출력과 브레이크 성능의 불일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브레이크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다.

- ADHD 2.0 -



2023.07.09 일요일 친정에 아이들을 맡긴 날.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시댁, 친정을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면 1주일간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고, 아이들이 있을 때 하지 못했던 일처리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 아이들을 무사히 인수인계하고 나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다음 1주일도 버틸 수 있다.


지난 주말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맡기고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문제는 토요일을 시댁에서 보낸 아이들을 친정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첫째의 ADHD약인 '콘서타'를 시댁에 놓고 온 것이다.


아뿔싸.

 

다음날 아침 일찍 먹여야 하기에 남편에게 약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다시 다녀오라는 눈치를 주었건만, 남편은 "그냥 하루 못 먹는 거지"라는 말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다.


같은 약을 먹는 엄마로서 약을 매일 잘 챙겨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에 가져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부모님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참고 넘어갔던 게 화근이었다.


약을 하루 안 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아이는 들판을 달리는 야생마가 된다. 너무 빨리 달려서 눈에 뵈는 게 없다. 제 갈길만 보고 달리는 자유로운 야생마.


내가 없는 친정집에서 아들 둘을(야생마 한 마리 포함) 돌볼 친정엄마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남편과 싸우기 싫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집으로 돌아왔고 애써 잠을 청했다.




일요일 아침이 밝아오고, 아침약을 챙겨 먹는데 문득 아들 생각이 났다. '아 진짜.. 약 먹여야 하는데' 집을 치우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애써 책을 읽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 2시. 아이들의 에너지가 넘칠 시간이다. 스터디 카페였기에 바로 받지 못했고 전화는 끊겼다. 잠시 뒤에 전화해야지 했는데 여동생에게 또 전화가 왔다. '아, SOS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 동생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있었다.


"왜 애들이 말 안 들어?"


"말을 듣겠어..."


"그렇지, 안 듣지.. 나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 중이었어"


"공부 방해해서 미안해 몰랐어..."


"언니가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나서 스터디카페에서 나왔고,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향했다.



"누가 말 안 들었어!"

신발도 벗기 전에 집이 울리게 크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우다다다 달려오는 아이들. 할머니는 잘 놀았다고 괜찮았다고 했다. 이모는 이미 안방에서 기절해 있었으며, 할아버지는 첫째를 가리키며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고 했다. 약을 먹이지 않은 나의 잘못이오.


첫째는 동생이 보고 있는 TV를 계속 가렸고, 둘째가 안 보인다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멈추지 않았다. 베개를 들고 빙글빙글 돌고, 할아버지의 효자손을 들고 휘두르고 다니는 아이를 보며 급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보통 친정에서 저녁을 먹으면 아이들 목욕까지 다 시키고 9시쯤 집에 오는데, 그날은 6시에 기 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빨리 가서 재우자라는 일념하나로.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분노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터졌다. 아이들이 차 뒷좌석에서 장난을 심하게 칠 것 같아 좁지만 셋이 뒷좌석에 탔다.


생각했던 대로 난리였다. 첫째는 계속 안전벨트를 풀고 의자 밑으로 흘러내렸다. 계속 벨트를 다시 채워주며 안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마른 몸은 벨트를 풀지 않고도 요리조리 빠져나왔다. 동네에 진입했기 때문에 조금만 참으면 됐지만, 1주일에 한 번 하는 가족회의 때 안전벨트를 잘 매자라고 약속했기에 나도 단호하게 벨트를 계속 채웠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나를 치면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차 세우고 내려주세요. 얘는 나랑 걸어갈 거예요"


"싫어요. 벨트 잘 매고 있을게요!"


차에서 내려서 걸어간 다는 말에 아이는 얼른 자세를 고쳐 잡으며 벨트를 잘 매겠다고 했지만, 집에 도착하기 전에 화가 폭발해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화를 내지 않으려면 내려야 했다. 나는 아이들이 벨트를 매지 않고 장난칠 때마다 '계속 그러면 내려서 걸어갈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그 이야기는 그날 현실이 되었다.


남편은 나와 첫째를 내려주고 출발했고, 아이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 그냥 조용히 집까지 갔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쏟아냈다.


"벨트를 매지 않으면 이렇게 걸어가야 하는 거야, 너는 지금 잠옷을 입고 있는데 사람들이 잠옷 입고 돌아다니는 거 다 알걸?"


"갑자기 내리라고 하는 건 너무해!"


"엄마는 너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줬어! 계속 벨트 다시 매라고 이야기했고, 네가 소리 지르고 화내도 엄마는 참았어! 가족회의 할 때 벨트 잘 매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안 지킨 건 너야"


몇 번의 이야기가 오가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도 속이 상했는지 나에게 잡혀있던 손목을 뺐다. 나는 터덜터덜 앞서 걸었다. 그 작은 알약 하나 안 먹였을 뿐인데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너무 답답하고, 내 모습도, 아이의 모습도 처량했다.


아이는 멀찍이 떨어져 뒤 따라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무서워하는 아이인데, 나는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못난엄마. 아이는 다급하게 나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 우리는 10분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했고, 나는 안방으로 아이를 불렀다.




"이리 오세요. 이야기하게"


아이는 속상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속상해?"


"네"


"어떤 게 속상했어?"


"내려서 걸어가라고 해서 속상했어"


"그랬구나, 속상한 마음 엄마도 알아.

그런데 우리, 왜 걸어온 거야?"


"벨트를 안 해서"


"맞아,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야"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아이는 이미 주의력이 분산되어 드러눕고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침대에 눕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네가 앉아서 이야기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


아이는 엄마가 이야기를 끝내기 전까지는 방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애써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론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찡아야, 아침에 알약 먹잖아, 그거 무슨 약인지 알고 있어? 엄마가 지난번에 이야기해 줬는데"


"마법의 약"


아이는 계속 나가고 싶은지 몸을 베베 꼬았다. 나도 지쳤지만 오늘 꼭 제대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7살에 약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했을 땐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약은 네가 하고 싶지 않은데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을 안 하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야. 생각주머니(뇌)를 자라게 해 주거든.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네가 멋지고 특별한 아이라서 의사 선생님께서 주시는 거야'라고 말이다.


이제 아이가 약을 먹은 지 1년이 지났다. 약을 먹지 않은 날의 아이의 모습을 오랜만에 마주하니 좀 더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 엄마가 마법의 약이라고 했지. 그때는 네가 어려서 그렇게 설명했었어. 약을 먹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

"먹기 싫어, 맛없어"


평소 아무 말 없이 잘 먹었지만 아이도 속으로는 약에 대해 막연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찡아야, 오늘처럼 네가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하게 되고, 행동을 멈추지 못할 때가 있지? 그러다가 혼이 나면 많이 속상하고 억울하잖아"


"네"


"그래, 엄마도 알아. 네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뇌에서 말과 행동을 조절해주는 부분이 천천히 발달해서 그래. 이 세상에는 그런 친구들이 많이 있어"


"아니야 나밖에 없을 거야"


"아니야, 엄마도 같은 약을 먹지? 엄마는 그 약을 왜 먹을까?"


"못 멈춰서"


"맞아, 엄마도 그래서 같은 약을 먹는 거야, OO형도 그 약을 먹고, OO삼촌도 똑같은 약을 먹어, 그리고 전 세계에 찡아랑 같은 약을 먹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어"


아이는 나가고 싶었는지 문 앞을 서성였다. 주의집중력이 좋지 않은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싶었지만, 아이가 조절을 하지 못해 속상한 일이 생긴 날이기에 스스로 약을 먹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고 싶구나? 엄마가 이것만 이야기할게. 찡아야. 너는 페라리야"


"페라리?"


"우리 찡아 엄청 빠르지? 너는 페라리급의 엔진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야, 그래서 달리기도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을 엄청 잘하는 거야!"


아이는 좋아하는 자동차의 이름이 나오자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봐, 너의 엔진은 페라리인데, 브레이크가 좀 약해. 자동차가 엄청 빨리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로 멈출까, 아니면 조금 밀리면서 멈출까?"


"조금 밀리면서"


"그래, 그것처럼 찡아도 엄청 빠르기 때문에 멈추기가 힘든 거야! 엔진은 페라리인데 브레이크가 자전거 강도 밖에 안 돼서 그런 거야"


"자전거라고?"


브레이크가 자전거라는 말에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자, 아빠차가 K5지? 아빠는 엔진도 K5고, 브레이크도 K5야. 너는 어떤 차가 더 좋아?"


"페라리"


"그래! 네가 먹는 약이 바로 너의 브레이크를 페라리 브레이크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약이야! 너는 이미 페라리니까 브레이크만 좋은 걸로 바꿔주면 돼! 알겠지? 너의 뇌에서 엔진역할을 부분은 페라리처럼 빠른데,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부분이 조금 천천히 자랄 뿐이야!"


"엄마, 호야는 씽씽카야. 호야 브레이크는 발이야!"

"우하하하하하!!"


동생은 역시 제일 안 좋은 걸 시켜주는 형아들의 마음이란. 자기 브레이크가 자전거급이라니까 동생은 발이 브레이크란다. 이야기를 끝내고 거실로 나간 아이는 자기가 페라리라면서 동생과 달리기 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우와 페라리 진짜 빠르다! 브레이크도 좋은가?' 하며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거야! 멈춰!'라고 이야기했고, 달리던 아이는 최선을 다해 끼익- 멈추었다. '잘했어 우리 아들! 그렇게 멈추는 거야!' 우린 그렇게 달리고 멈추는 놀이를 한참동안 했다.




놀이가 끝나고 첫째는 거실을 돌기 시작했다.그러다 거실 한쪽에 개어 놓은 들을 밟고, 이리저리 흩어지게 했다. 그래 바로 서랍에 넣지 않은 내 잘 못이지.


"찡아야. 엄마가 개어놓은 옷을 왜 자꾸 밟는 거야? 흐트러지잖아 그만해!"


나의 말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흩어지게 했다. 응, 안 들리는구나.


"그만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왜 그러지? 하지 마!"

"브레이크가 박살 났어"


"하.... 브레이크가 약한 거랬지 없다고는 안 했어!! 너 이리 와!!!"


우당탕탕탕....



그래. 박살 난 브레이크 내일부터 다시 수리해 보자...!!





ADHD아들을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께 전합니다. 아이에게 너는 페라리야, 람보르기니야, 너는 슈퍼카야!라고 이야기 해주세요. 매우 좋아합니다. 브레이크만 조금 손보면 진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다고 말이에요.


병원에 가는 건 자동차가 정기점검받으러 가는 것과 같고, 약은 최고급 휘발유와 같다고요.


이제 더 이상 약 먹일 때 '키 크는 약이야', '똑똑해지는 약이야'라고 이야기하지 마시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잘 이야기한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아이들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단 잘못을 해놓고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그래', '약을 안 먹어서 그래' 할 수 도 있어요.


그럴 때는 조용히 꼭 안아주시면서 속삭여주세요.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1등 못하겠다~'




<찡아는 첫째의 태명, 호야는 둘째의 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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