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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Jul 30. 2023

8년 외벌이 남편에게 '2년만 더!'를 외쳤다

여보, 미안하지만 글을 쓰고 싶어

 8년간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 말은 남편이 외벌이를 한 지 8년째라는 뜻이다. 남편이 월급을 아주 많이 받아와서 8년을 편히 쉰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것 외에는 많은 것을 아꼈다.


물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조금이나마 저축을 하고 네 식구 먹고, 입으며 8년을 살았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도 나의 경력단절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아무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때까지는 꼭 내가 키울 거야'라는 마음이 강했다고 해도, 8년이란 세월이 흘러갈 줄이야.


결혼 전 유치원 교사였기에 잠자고 있는 교원자격증을 언제라도 흔들어 깨워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 '엄마'로 살아온 세월이 '교사'로 살았던 시간을 추월하면서부터 나의 자신감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2021년,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조급해졌다. 남편이 무조건 아파트로 이사 가야 한다며 넣은 청약이 당첨된 것이다. 신혼부부 특공. 마지막 기회에 올라탔다. 기쁨은 잠시, 억 소리 나는 집값 나는 '당장이라도 일하러 나가야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눈앞이 캄캄했다.


 완공이 되고 입주를 하려면 2년 반이나 남았지만, 계약금을 내느라 모은 돈을 다 쓰고 나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3억 5천이란 돈을 대출받았으니 그 이자는 어찌할꼬.


남편 혼자 벌어서는 한 달에 달랑 50만 원 밖에 저축을 못하는데. 2년 반 모아봤자 이사비용에 가구들을 바꾸고 나면 끝이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이제야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삶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지금 쉴 시간이 어디 있어, 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해!' 환청이라도 들리는 듯 머릿속은 바빠졌다.


둘째가 태어나서, 애들이 아직 어려서, 코로나로 전 세계가 마비되고 아이들이 등원을 못해서 등등의 핑계를 대며 버텼다. 그런데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두 아이 모두 유치원에 다니니 할 말이 없었다. 나만 결단을 내리면 됐다.


하지만 난 두려웠다. 엄마와 선생님, 둘 다 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빠져나갈 구멍을 계속 찾았다. 어마어마한 이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짓눌렸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유치원으로 돌아가긴 어려웠다. 아니, 어렵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여보, 유치원은 출근도 이르고 퇴근도 늦잖아. 그리고 아직 애들이 어려서 자주 아픈데, 내 새끼들 아프다고 반 아이들 버려두고 올 수도 없고..


당신이 출장을 많이 가서 애들 데리러 갈 수 없는 날도 있고, 내가 일하면서 애들을 어떻게 혼자 돌보겠어. 짧은 시간 근무하는 보조교사 자리를 알아보려고 해도 우리 애들 등원차량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된단 말이야.."



남편이 나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언제쯤 일을 할 수 있겠는지 물을 때마다 정확히 말을 못 하고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만 주절주절 늘어놓기 일쑤였다.


남편은 유치원 말고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배워보고 싶은 게 있으면 배워보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회피했다. 성인이 된 이후 유치원 아이들, 내 새끼들, 계속 애들만 보고 살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고. 다른 건 해보고 싶은 게 없다고. 사실 자신이 없다고.


남편은 고맙게도 빨리 일을 하라고 채근하거나, 부담을 주진 않았다. 남편도 아이들이 어리다고 생각했는지 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시간은 어영부영 지나갔고, 2022년 겨울, 나와 아이의 ADHD성향을 알게 되었다. 나에겐 또 일하지 못할 사정이 생긴 것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동반한 성인 ADHD진단은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런 만신창이가 된 채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왜 다시 일을 하는 게 두려웠는지, 왜 가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답답하고 불안했는지,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우울했는지. 진단명이 모든 걸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들이 눈에 밟혔다.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눈치채지 못한, 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못난 어미는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ADHD증상으로 인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계속 받으며 자란 아이의  불안하고,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치료해야 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아이들을 제쳐두고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와 나의 ADHD진단에 크게 넘어졌지만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우울은 멀어지기 시작했고 시련은 오히려 나의 오기를 자극했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2023년. 나는 아이와 함께 치료를 받으며 ADHD를 파기 시작했다. ADHD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과 소통한다며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보고, 유튜브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여보, 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나 책을 낼 거야. 내 이름 석자 들어간, 나랑 우리 애들 이야기가 들어간 책. 유치원에는 돌아가지 않을래"


"흠. 이제 우리 1년 뒤면 이사 가야 해. 시간이 많지 않아"


"이사 가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사 가면 나, 당장 일하러 나가야겠지?"


"부모님이 빌려주신 돈으로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


"이사 가고 1년? 그럼 지금부터 2년 남은 거네? 오빠. 나 2년만 주라 내가 뭐라도 해보고 2년 뒤에 아무런 성과도 없으면 당장 뛰쳐나갈게. 알바라도 해서 이자만이라도 벌어올게"


"알았어. 이사 가고 애들 새 학교, 새 유치원 적응하려면 너도 바로 일하기 힘드니까 그렇게 해봐. 2년 이상은 힘들어"


"알겠어. 고마워! 나 진짜 열심히 할게"


남편은 착하다. 그리고 상당히 이성적이다. 지금 내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번 꽂히면 뒤도안 돌아보고 직진하는 나를 10년간 봐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 네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내 얘기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 하고픈 거 다하고 2년 지나면 깔끔하게 일하러 가라' 이런 마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어떤가.


나는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얻었고, 6개월이 지났다. 6개월 동안 유튜버도 해보고,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 없이 집밖으로 쫓겨날까 초조하지만 담담히 나의 길을 가겠다. 그리고 2년이 지나면 미련 없이 일을 하러 나가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도 변해야겠지. 일을 하면서도 글은 쓸 수 있으니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1년 반동안 쭉쭉 성장해서 집에 붙어있고 싶다.


집순이가 다되었다. 오늘도 적어본다. 나의 소원.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글만 쓰게 해 주세요. 제발!






이 글이 다음메인과 브런치 메인에 올랐네요.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제 입장에서만 쓴 글이라 오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덧붙여요.


남편은 항상 제가 가사와 육아를 하느라 고생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쉬는 날, 퇴근하고 오면 집안일과 아이돌 보는 것, 늘 함께합니다^^


 남편이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 제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경력단절이 길었는데요, 남편도 제가 원한다면 일하지 않고 쭉 집에서 아이들 돌보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많이 이야기해요ㅎㅎ 그런데 아이들도 크고 계속 전세에 살 수 없으니 조금 무리해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최대한 배려해서 2년이란 시간을 더, 외벌이 하기로 한 것이지요. 남편에게 참 고마운 일이에요. 물론 저도 육아와 가사에 공부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요. 어찌 되었건 미래가 불확실한데도 다른 일 알아보라고 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고 지지해 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인데, 세상의 워킹대디, 워킹맘들 진심으로 존경하고 멋지십니다. 행복하십시오♡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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