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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Jun 29. 2023

종갓집 맏며느리 8년 차, 참 행복합니다?!

엄마는 숟가락만 얹은 '이 씨 가문 종손'의 생일잔치.

2016.6.29 오전 11시 9분 3.4kg

전주 이 씨 가문 종손 ' ' 세상에 태어나다.

그렇다. 나는 종갓집 맏며느리 8년 차다.

그것도 아들을 둘이나 낳은.



26살. 시집을 온 해에 아들을 낳았으니, 나는 100점짜리 며느리겠지? 아들이든 딸이든 나는 아무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할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떠나시는 길 얼마나 안타까우셨을지... 결혼과 동시에 손주를 데리고 왔다고 예뻐해 주셨던 기억에, 마지막으로 뵌 중환자 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뱃속에 있던 아들아 너도 슬퍼하였느냐.



첫째는 성질이 급했다. 이 만큼 참은 것도 어디냐 싶을 정도로 아주 뱃속에서 빵빵차며 난리를 치더니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어요'



양수가 터졌다.

그것도 새벽에 자고 있는데. '진통이 1도 없는데? 이렇게 터진다고?' 잠이 확 깼지만 초보엄마는 상당히 침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웃기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진통과 함께 양수가 터지면서 난리법석이던데. 평화로운 진행이 뭔가 이상하면 서도 다행이었다. 출장을 밥먹듯이 가는 남편도 그날은 옆에 있었다. 남편도 당황하지 않았다. 원래 당황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대충 생리대를 차고 아기에게 말했다.



"응 나오고 싶구나,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 엄마 머리 좀 감고"



그러고선 머리를 감았다. 출산 후엔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 했으니까. 엄마가 되었어도 외모에 한창 신경 쓸 나이, 26살이었다. 머리를 다 감고 출산가방을 챙기며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일단 안 아프니 먹어두자.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오물오물 맛있게 빵을 먹었다. 배가  살짝 아픈 것  같기도 했는데 생리통 수준이었다 참을 만했다. 순조로웠다. 여기까지는. 나는 셋째 정도 낳아  엄마처럼 병원으로 사뿐히 들어섰다.


"양수가 터졌어요"


"배 안 아프세요?"


"네 생리통 정도예요"


"유도분만 하겠습니다"


"네?"


"지금부터 물 포함 아무것도 드시지 마세요"


으앗. 나 빵 먹고 물 못 마셨는데. 이런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유도분만을 위한 약물을 투여한 뒤 엄청난 고통을 맛보았다.


아니 다들 10시간 12시간 진통하고 낳았다고 그랬는데, 이게 뭐야?!! 생리통 수준이었던 아픔에서 몇 분 만에 출산 직전의 고통까지 도달했다.


예고 없는 고통이었다. 유도분만 무서운 거더라. 나는 결국 수건을 던졌다. 무통주사 놔주세요. 엉엉. 바로 척추신경에 주사를 맞았고, 나는 잠시 무통천국을 맛보았다. 


무통이라는 말처럼 하나도 안 아픈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맞기 전과 비교하면 천국이다. 긴장이 풀리니 잠이 올 것 같았다.



"주무시면 안 돼요"



간호사의 말을 끝으로 나는 무통주사를 맞은 것을 후회했다.자궁문이 열리고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 순간부터 출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무통 주사의 효과가 오래 지속되어 아무리 힘을 줘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배운 대로 열심히 호흡하고, 힘도 주었는데 계속 혼났다.



"산모님 아기 산소가 꾸 떨어져요 힘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엉엉..


결국 보다 못한 간호사가 내 위로 올라가서 온 힘을 다해 배를 눌렀다. 한 시간이 넘어가자 정말 쓰러지겠다 싶을 정도로 진이 빠졌고, 애도 나도 죽겠다 싶을 때 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이 들어와 탯줄을 잘랐다. 그런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길했다.  간호사는 내 품에 아기를 안겨주지 않았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폐에 양수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기를 안고 황급히 분만실을 나서는 간호사를 보며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 덜 힘들자고 너를 고생시켰구나. 시작부터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품에 안아보지도, 얼굴을 보지도 못해 이틀간 얼마나 애가탔는지.



사흘 만에 처음 만난 아가는 천사였다. 내 배 아파 낳은 핏덩이를 바로 안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웠지만 감사했다. 이렇게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생고생하며 태어난 첫째 아들 녀석은 어찌 자랐냐고? 걷는 것은 속도가 안 나니 답답한지 돌이 지나도 걸을 생각을 안 했던 아기. 5G급으로 기어 다니며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또래친구들을 다 제쳐버리더니,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1등 했다며 자랑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동생을 질투하며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가 '내 말 안 들으면 혼쭐 날 줄 알아'라고 말하는 무서운 형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8살, 아이의 7번째 생일이다. 이제 만 나이가 사라졌으니 7살인가?아무튼, 이 귀하디 귀한 이 씨 가문 장손의 생일잔치 잘 준비했냐고? 허허. 나는 설거지 외에는 한 게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었다.


난 정말 엄마가 맞는가. 오늘 아침 미역국도 못 끓여 줬다. 저녁에는 꼭 끓여줘야지. 아이의 생일은 글을 쓰는 오늘, 29일이지만,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기 위해 지난 주말에 미리 생일파티를 했다. 선물과 케이크, 생일파티 배경 및 소품은 모두 다 고모의 손길.


몇 년 동안 시언니가 첫째, 둘째의 생일파티를 해주셨다. 서운하지 말라고 첫째 생일엔 둘째 선물도. 둘째 생일엔 첫째 선물까지. 앞으로도 계속 챙겨주실 것 같은데 나는 송구해서 어찌하나. 나는 몇 년째 다 차려진 생일상 앞에서 사진만 찍고 있다. 세상에 이런 엄마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새끼들은 엄마가 두 명이다. 놀이공원이며 아울렛이며 제주도며 어디든 데려가고, 옷이며 신발이며 좋은 것만 사주는 고모.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이런 집에 시집을 오다니!! 종갓집 며느리가 부담스러웠던 26살.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항상 변함없이 잘해주시는 가족들.


나 힘들지 않게  제사 다 없애고 가실 거라던 어머님, 항상 아이 키우느라 고생 많다고 맛난 것 사주시는 아버님. 주말이면 아이들 다 데려가서 돌봐주셔서 나를 자유부인 만들어주시는 시언니. 난 참 행복하다.



물론 수많은 제사를 지내는 것, 명절 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식구들이 어마하다. 그래도  아이 둘 낳고 기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해 주셨던가. 감사하다.



어머님, 아버님 생신 때도 대접해드리지 못했던, 귀한 아들생일 때도 챙겨주시지 않았던 최고급 소고기. 손자를 위해 준비해 주셨다. 눈으로만 봐도 맛있는 데 숯불을 피워 구워주시기까지.


나는 세상 맛있게 먹으며 반성을 했다. 어머님 아버님 생신상 한번 제 손으로 챙겨드린 적 없는 나쁜 며느리라고. 어머님, 아버님 생신이 되면 얼마 안 되는 용돈 챙겨드리는 게 전부라 늘 죄송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나는 100점이 아니라 빵점짜리 며느리다.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지 말자!



어머님, 아버님, 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지금은 글쟁이 되겠다고 아이들 맡기고 처박혀 있지만, 이 손가락 열개로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귀한 아들 8년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덜 힘들게 할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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