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8살 두 아들을 키우는 33살 엄마가 스터디카페에 간다. 새벽 네시반에도 가고, 애들 등교, 등원시키고 또 간다. 주말엔 아이들을 시댁, 친정을 오가는 떠돌이 신세를 만들고 10시간씩 붙어 있는다. 그녀는 왜 스터디카페에 다니는 걸까?
시험준비? 취업준비?
새해가 밝아오면 다들 새로 태어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항상 그대로였다. 결혼을 한 2016년, 26살에 멈춰있었다.사회와 단절된 채 고립되어 가사와 육아에만 매달린 8년. 자기 계발은커녕 항상 제대로 씻지도 않고 아이들만 바라보며 먹은 나이따윈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친구들이 항상 '네가 제일 부럽다'라고 할 때도 기쁘지 않았다. 그냥 인생의 숙제 몇 개를 자신들보다 빨리 끝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 그 속에 있는 좌절과 고통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
그래도아들 둘에 8년이면 육아만렙이 되지 않았냐고? 오히려 나의 육아 효능감은 낮아졌고 모성애는 퇴행했다. 불안과 우울이 반복해서 놀러 오는 통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나름 자랑스러워했던 전직 유치원교사 타이틀은 옆집 강아지에게 간식으로 준 것 마냥 조각조각 찢겨 버렸다. 착한 척, 친절한 척을 할 수가 없었다. 가면을 벗어버렸다. 아이들은 날것의 나를 만났다. 더 이상 상냥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은, 언제 화를 낼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엄마와 지내는 아이들이 불쌍했지만 나도 내가 감당이 안 됐다.
나는 매일 하루살이처럼 하루만 살고 저녁이 되면 죽었다. 다음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눈을 뜨면 '그래 새끼들이 있지. 밥은 먹여야지, 하루만 더 살자'하며 연명한 것이 생명유지 비법이랄까.나를 위한 삶은 누가 삶아서 먹어버린 건지 흔적도 없었다. 두려웠다. 나를 위해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기 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나를일으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순되게도 나와 아이의 ADHD 진단이었다.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었던 일이 나를 다시 살려놓았다. 물론 절망스러웠던 시간이 없던 것은 아니다. 아파했다. 충분히 아파했다.다시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출산의 고통을 다시 겪는 편을 선택하겠다.
정말 나를 나가떨어지게 하려고 이렇게 힘든 일만 계속 생기는 것일까 하며 엎어져 있다가도 오기가 생겨 벌떡 일어났다. 평생을 모른 채 살았던 나의 ADHD 때문에 억울해서 엉엉 울다가도 그것을 물려받은 아이가 더 억울하겠지 하며 눈물을 싹싹 닦았다. 그리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과몰입+충동성+추진력 끝판왕인 성인 ADHD 엄마는 ADHD에 관련된 책들을 끌어모으며 읽기 시작했고,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소통을 하겠다며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조명, 마이크, 책상, 의자까지 사들이면서 앞만 보고 돌진했다. 또 ADHD아이를 키우는 성인 ADHD엄마의 경험과 애환을 담은 책을 출간하겠다고 잠자고 있던 글쓰기 본능까지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진짜 내 인생,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겠다는 의지로 유튜브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메타인지는 아까 등장했던 옆집 강아지한테나 줘버리고 계속판을 벌였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남들이 봤을 땐 처참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돈 백 들여가며 유튜브 한다고 준비하고 난리 치더니 몇 달 만에 나가떨어지고(몸이 계속 아팠고, 콘텐츠 방향성 대한 고민이 생겼다), 새벽 5시 기상을 해가며 유튜브대학 1학기 수강을 겨우 마쳤다. 8년 동안 못 읽은 책을 다 읽을 것처럼 수십 권을 쌓아 놓더니 밀린 일기 쓰듯이 머리를 쥐어짜며 읽고 있다. 잠자는 글쓰기 본능을 깨운다고 충동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 놓고서는 막상 글도 많이 쓰지 못했다.
집은 어떠한가? 애들은?
엄마 없는 애들이 되었고, 주인 없는 집이 되었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
용두사미.
내 몸은 하나이니 예견된 결과다. 다 해내지 못할 것이란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냥 억울했던 것 같다. 지나간 나의 8년이. 아니 33년 인생이. 어렸을 때부터 ADHD치료를 받았더라면 나는 훨씬 더 잘 해냈을 텐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 이제라도 뜯어고치고 싶었다.아이들 키우며 삭제된 것 같은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스터디카페는 왜 다니냐고? 2차전을 뛰기 위해서다. 잠시 훈련기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주 빡세게! 휴식기가 아니라 훈련기간 이라니. 이놈의 ADHD, 한번 꽂히니 포기할 줄을 모른다. 내가 벌여 놓은 일들 하나씩 수습해야지.
일단 어마무시하게 사놓은 책들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볼 것이다. 찬찬히. 내가 안정이 되어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를 건넬 수 있으니까. 유튜브대학도 남은 학기들 꾸준히 수강해서 졸업해야지. 나의 생각과 경험이 더 깊어졌을 때 유튜브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며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포기하지 않겠다.
사실 스터디카페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된다. ADHD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환경이 상당히 중요하다. 집에 있는 물건들이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건다 자기 좀 봐달라고. 그래서 도망쳤다. 아무튼 나는 100시간권을 끊었고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를 동반한 성인 ADHD를 가진, 아들 둘 키우는 엄마가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10시간을 채우고 집에 갔을 때 그 뿌듯함이란.
사실 지금도 스터디카페에서 독서를 하다 지겨워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10시간 채우고 갈 생각이다. 기말고사기간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많다. 애들아 힘내렴 아줌마가 옆에서 한가하게 핸드폰 만지니까 여유로워 보이지? 하지만 너희보다 내가 더 급하단다.너희처럼 당장 시험을 보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너희는 홀몸으로 산을 넘지만, 나는 내 새끼들을 둘러업고 산을 넘어야 하거든. 나이가 많아서 시간도 별로 없어. 정말 부럽구나. 부모님께 감사하며 공부 열심히 하렴. 노력하는 너희들의 모습에 이 아줌마도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