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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LAB Dec 06. 2024

괜찮아지려고 너무 애썼더니 번아웃이 찾아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부정적 감정은 흘려보내기

ADHD 아이를 키우는 건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 얹어놓고 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충동적 언행에 신경쓰다보니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아이와 마찰음을 낼 때마다 시시각각 마음 저 밑에서 답답함이 올라오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죠


시시각각 몰려드는 부정적 감정을 애써 소화하고 있었어요.

일말의 희망을 찾기 위해 구석구석 살폈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의연해보이고 괜찮아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제가 괜찮아지기 위해 마음속으로 애써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동안은 괜찮았고

아이와 잘 지냈고

웃을 수도 있었고

일상 생활도 비교적 잘 해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유독 아이와 많이 부대끼는 날이 있어요.

충돌하고 갈등하는 날이요.

아이의 충동적 요구사항이 끊임없이 이어지거나

아이의 짜증이 흘러 넘치거나

제게 선을 넘는 말을 하거나

아이가 감정폭발을 일으키고 물건을 집어던지면

그간 애써 해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제 감정이 바닥을 찍었습니다.


제 안에서 처리되지 않는 부정적 감정들이 저를 집어삼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정적 감정에 집어삼켜지니

생각지도 못했던 말과 행동을 제가 하고있었어요.


어느날부턴가 웃음을 잃었어요.

표정도 잃었던 거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좋은지 나쁜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바짝 말라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일하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요.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어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했고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아이와의 갈등을 유발했을 것이라며 한동안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죠.

그리고 엄마니까 다시 힘을 내자며

바닥을 찍은 감정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어요.

지치고 바닥을 찍고 회복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반복됐어요.


몇년 간 반복되다보니 결국 번아웃 상태가 되었어요.

아이가 2021년 11월 ADHD 진단을 받을 때 저도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죠.

아이는 메디키넷을 처방받았고

저는 프록틴을 처방받았습니다.

프록틴이 무엇인지 찾아봤더니, 우울증 약으로 유명한 프로작의 카피약이더라고요.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나니

서러움이 물밀듯 몰려왔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이해할 수 없었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김혜남 작가님의 책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을 보고 알았습니다.

번아웃은 ADHD 아이를 키우며 제가 느낀 온갖 부정적 감정, 정서로부터 저를 지키려고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컨트롤 해보려고

과도하게 고민하고 에너지를 써버린 결과였어요.


감정의 바닥으로부터 저를 끌어올리려고 했던 그간의 모든 과정들이

이제 본능적으로 내가 살아남기 위해 했던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제 스스로가 안쓰러워졌어요.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에게 보통 “왜이렇게 무기력하냐”, “밖에 나가 뭐라도 해봐라”라고 말하죠

그런데 이런 말은 전혀 효과가 없어요.

스스로 너무나 많은걸 해결해보려다가 지친 사람에게 뭘 더 하라고 해봤자 소용없더라고요.

번아웃에 빠진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건 휴식이에요.


번아웃 진단을 받고 나니

이제까지의 방법으로는 앞으로 아이와 저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든 변해야 했죠.

스스로에게 쉼을 주어야했어요.


그때부터 안 되는 건 일단 놔두자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포기하거나 미루는 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현재 할 수 있는 것,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힘들 땐 공간적으로 아이와 나를 분리시키고 스스로를 쉬게 해주겠다는 다짐도 했어요.

그리고 괜찮아지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어요

힘들 땐 힘들어하고 부정적 감정이 들 땐 흘려보내려고 했어요

이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아이가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면서

그리고 아이에게 맞는 의사선생님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희망을 찾게 되고

아이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며

제 번아웃도 완화되었어요.


그래도 문득문득 번아웃의 조짐이 느껴지면

“내가 쉬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괜찮아져야한다는 마음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지키고 돌보는 것이라는 것

잊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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